우계(牛溪) 성혼(成渾) 선생은 문묘에 배향된 18인 중 한 분이며, 파주가 낳은 대 선비 파주삼현(坡州三賢) 중 한 분이다. 3현은 율곡 이이(1536~1584), 구봉 송익필(1534~1599), 그리고 우계 성혼(1535~1598) 선생이다. 세 분은 나이가 한 살 차이지만 우애가 돈독했다고 한다. 학문에 관하여 편지를 주고받은 것을 책으로 만든 게 삼현수간(三賢手簡)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 일행은 4월 29일 3현 중에서 율곡 선생과 성혼 선생의 유적 답사했다. 아쉽게도 구봉 선생은 양반 신분에서 노비 신분으로 환천(換賤)이 되는 아품이 있었고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어떤 유물 유적도 없어 찾아 갈 곳도 없었다.
우계 선생의 묘는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향양리 산 8-2에 있다. 파주역에서 걸어서 1시간, 차로 8분 거리에 있다. 선생의 묘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었다. 정면에는 상석, 향로석이 있고, 동자석 1쌍이 있다. 묘비는 우측에 서향해 서 있었다. 묘비는 인조 27년 신독재 김 집이 짓고, 선생의 외손자인 윤선거가 썼다. 그 아래에 선생의 아버지 성수침과 어머니 파평윤씨의 묘가 있다. 부모의 묘가 자식의 묘 아래에 있다고 하여 역장(逆葬)이라고도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역장도 예법에 어긋나지 않았나 보였다.
선생의 묘에서 동남쪽에 비각이 있는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는 김상헌이 짓고, 김 집이 썼다. 김 집은 율곡의 수제자인 사계 김장생의 아들이다. 성혼 선생의 신도비 옆 같은 비각 안에는 선생의 아버지 성수침 선생의 묘갈이 있다. "聽訟成先生墓碣名(청송성선생묘갈명)"은 퇴계 이황이 썼다. 우계 선생은 율곡과 함께 1568년 가을 34세 때 퇴계 이황 선생을 찾아 뵌 적이 있다.
선생의 사당은 신도비의 동남쪽에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팔작지붕이다. 사당은 사방으로 기와 담장이 있고, 정면에 이춘문(易春門)이 있다. 이춘문 앞쪽에 동향으로 재실인 모덕재(慕德齋)가 있다. 이춘문 남쪽으로 묘역의 입구에 외삼문이 있고, 외삼문의 서북 방향으로 홍살문이 있다.
묘역의 입구에 현대식 건물의 우계 기념관이 있다.
우리 일행은 그날 오후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파산서원길 24-40 파산서원을 찾아갔다. 이 서원은 성혼 선생과 선생의 아버지 성수침, 삼촌 성수종, 그리고 백인걸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일행이 찾았을 때 주변은 잡초가 무성하였고, 건물은 보수 중이었다.
우계 선생께서 벼슬자리를 멀리하고 후학 양성이 힘을 쏟았고, 나라가 어려울 때는 상소를 올리는 등 국난 어려움 극복에 노력했다. 그가 쌓은 유덕은 후손과 후학들에게 잘 계승되어 선생의 묘역, 사당, 기념관 등 유적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고, 제향을 매년 올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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