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은 10월 24일 오전 이화원 17공교를 건너 남호도(南湖島)를 둘러 보았다. 우리 일행이 찾은 이화원은 정문이 아니라 정문에서 남쪽으로 2km쯤 떨어져 있는 남호도 가는 곳에 있는 이화원신건궁문( 頤和園新建宮門)으로 입장하여 멀리서 이화원을 관람했다.
이화원 정문으로 입장하면 수 많은 유물 유적을 볼 수 있지만 관광객이 몰려 관람시간이 오래 걸려 가이드는 볼거리가 많은 정문 입장을 하지 않고 관광객이 없는 한산한 곳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이곳 이화원은 자금성의 4배의 규모로 크고 많은 유적이 있어 볼거리가 많은 관광명소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 일행이 찾은 남호도에서 관람은 멀리 까마득하게 이화원 보는 것뿐이다. 나는 2000년에 이화원 정문을 통하여 입장하여 긴회랑(長廊)에서 수 많은 그림을 보았고, 수 많은 건물과 유적을 본 적이 있다.
여행사를 통한 페캐지 관광은 시간에 쫒겨 여러 곳을 점만 찍는 경우라 많다. 또 가이드도 먹고 살아야 하니, 관광지는 가능하면 빠른 시간에 관람하고, 물건 사는 곳에는 오랜 시간 머물려고 하니 점만 찍는 관광이 된다. 그런 관광의 문제가 있으면서도 페케지 관광은 가이드를 통하여 실감나는 해설을 들을 수 있고, 편하게 대절 버스로 이동하여 여러 명소를 찾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위키백과는 이화원에 관하여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화원(頤和園)은 북경 서북부의 하이뎬 구에 위치한 정원 공원이자 궁전이다. 주로 60m 높이의 만수산과 쿤밍호에 많은 공을 들여서 공사를 하였다. 이화원의 면적은 2.9평방킬로미터이고 이중에 3/4이 호수로 구성되어 있다. 쿤밍호는 2.2평방킬로미터를 차지하며, 사람을 동원해서 바닥을 파낸 완전 수작업 호수이다. 파낸 흙은 만수산을 쌓는 데 사용되었다. 7만 평방 미터의 공간에 궁과 정원 그리고 고전적인 건축을 살려낸 것이 특징이다.
건륭제 재위 15년에 공사를 개시하였다. 솜씨 좋은 장인들은 정원 양식의 다양한 궁궐을 창조해 내었다. 쿤밍호는 기존의 작은 연못을 확장하여 항저우의 서호를 모방하여 만들어졌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으로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공격에 의해 수난을 당했고, 모조리 약탈당했다. 1900년에도 의화단의 운동 때도 8개국의 서양 열강에 의해 공격당하였다. 다행히도 완파되지는 않아서, 1886년과 1902년에 서태후에 의해 재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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