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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슬픈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목포 여행 첫 걸음

by 仲林堂 김용헌 2024. 4. 28.

새끼손가락만한 크기의 작은 복, 쪽복탕에서 점심식사다. 60년대 시골집과 같이 소박하다. 촌 사람이 나는 그런대로 먹을 만했지만, 미식가인 처는 맛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벽도지, 낙서도 정겹다.
일본집이 한 채 보인다.
바로 목포 옛 부두 근처이지만 한적하기만 거리다.
바로 앞이 부두다. 그런데도 인적도 없고 상가도 변변치 않다.
지나는 거리에서 본 한 음식점 벽에 걸린 사진이다.
벽에 걸린 사진을 근접촬영하니, 아마 일제 강점기나 40~50년대 번창했던 목포항의 모습 같다.
쓸쓸한 거리에 빗낱까지 뜨고, 바람도 부는 거리다.
대로변 상가도 장사가 안되어 폐점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부두에서 1~2km떨어진 일제에는 일본영사관으로, 해방 후에는 목포시청으로 사용했던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을 찾았다.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 건물로 향하는 계단이다.
일제 강점기 목포시 모습이다. 고층건물은 없지만 반듯한 건물이다. 그 당시 얼마나 이 도시가 번창했나 짐작이 간다.
목포근대문화역사공간 건물이다. 이 건물은 일본 영사관으로 사용했고, 해방 이후 목포시청, 시립도서관, 문화원으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역사문화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제가 조선침략하면서 토지를 뺏으려 첫번째 한 짓이 토지측량이다.
일본은 조선에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전국의 여러 도시에 세웠다. 이 회사는 은행으로 조선에 들어 온 일본인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그 일본인은 그 돈으로 조선인의 땅을 시세보다 약간 비싼 가격으로 구입했다. 땅을 판 우리 나라 사람은 일본인의 소작인이 되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이용하여 일본인은 한국땅을 거의 대부분 구입했고, 조선인은 모두 일본인의 소작인이 되었다.

 

 

목포는 전라도를 대표하는 큰 도시였다. 경상도에 부산이 있다면 전라도에는 목포가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얼마자 SBS TV에서 방영했던 프로에서 방영을 보았듯이,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1967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목포에서 출마한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려고 목포에서 국무회의를 개최할 정도로 이목을 끌었던 도시이다. 

 

우리 일행은 목포옛 부두가 있는 작은 음식점 '조선쫄복탕'이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빗낱이 뜨고 바람도 불고 하여 밖으로 나가기가 나빠 인근 카폐에서 차를 마시고, 목포근대문화역사공관에서 목포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그 후 유달산으로 노적봉에 도착했으나, 비바람 때문에 관광은 포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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