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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덕수궁 관람

by 仲林堂 김용헌 2024. 1. 21.

대한문 앞에서 왕궁근위병 업무교대식을 하고 있다.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의 중국은 천자국이고, 우리나라는 천자국 아래 제위국으로 조선시대까지 있었으나, 고종이 더 이상 우리나라도 중국의 속국이 아니라 1897년 독립 황제국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것이 대한제국이다. 고종이 이곳에 거처하시면서 황제국으로 그 위상에 걸맞게 영역을 넓히고 현대식 석조건물을 지으며 나라를 근대화를 모색한 곳이다.
대한제궁의 정전(正殿)의 대문인 중화문이다.
1902년 처음 지었을 때는 중층이었으나 1904년 대화재로 소실되어 1905년 다시 단층으로 지었다.
신하들이 픔계별로 서립하는 표석이 있다.
중화전 안 임금이 앉는 어좌(御坐)가 있고 그 뒤에 일월오월도가 있다.
석조전이다.
석조전이다. 지금은 대한제국역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즉조당이다.
석어당이다.
석어당 내부다.
정관헌이다.
덕흥전이다.
함녕전이다.
함녕전 내부이다.

 

덕수궁은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피난 갔다 돌아오니 궁궐든 다 타버려 세조의 큰 아들인 월산대군의 후손이 살던 집을 임시 거처로 삼으며 처음으로 궁궐로 사용했다.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고 이곳을 경운궁(慶運宮)이라고 불렀다. 그 후 궁으로 사용하지 않타가 고종이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사관에 잠시 머물다 옮기고 부터 궁으로 사용하였다. 고종은 경운궁으로 돌아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제후국에서 황제국으로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사를 지낸 뒤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고종은 이곳을 대한제국의 위상에 맞게 여러 전각을 세우고, 영역을 확장했다. 

 

1907년 고종이 일제 강압에 의하여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부터 경운궁을 덕수궁으로 불렀다. 고종은 1919년 승하할 때까지 덕수궁에서 지냈다. 

 

나는 어제 1월 20일 12시 모임이 덕수궁 앞 처가집이란 음식점에서 50분 전에 1호선 시청역에서 내려 30여분 동안 덕수궁을 돌아보았다. 너무 짧은 시간이라서 사진 찍기에 바빴으며 자세히 볼 수 없었다. 다음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가 보고 싶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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