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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탑평리 7층 석탑

by 仲林堂 김용헌 2023. 11. 4.

중앙탑사적공원이다. 양 날개를 편 조형물이 우리 일행을 환영하고 있다.
멀리서 본 탑이다. 평지에 높은 언덕을 쌓은 후 탑을 세웠다.
단 아래에서 본 모습이다.
단 위에서 본 석탑이다. 씩씩함이 보인다. 하늘로 치솟은 기상이 드 높다.
옥개석의 하단은 '층급받침'은 7개의 층이 있다. 천년을 넘게 넘이지지 않고 온전하게 보전되고 있다.
석탑에서 50여미터 옆에는 남한강이다. 강변에 산책 다리를 놓았다.
탑 앞에 석물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검색해 보니  석등하대석(石燈下臺石)으로 보이는 8각 연화대석(蓮華臺石) 라고 한다. 이곳에 석등을 세운자리로 보아 이곳은 절터라고 보고 있으며 이곳 사찰의 이름은 알 수 없다고 한다.
돌에 약간의 흠집은 있으나 천년을 넘게 지탱하고 있으니 강한 화강석이다.
일부 마모된 곳이 보인다.
옥개석도 일부 떨어저 나간 곳도 있다.
상층부도 자세히 보니 돌이 떨어져 나간 곳이 많다.
꼭대기 '앙화 (仰花) '이다.

 

 

충주탑평리7층석탑은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화강암 석재의 탑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높다. ‘중앙탑(中央塔)’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그러나 고려 시대로 보면 이곳이 중앙이라고 보나 조선시대로 보면 중앙에서 남쪽에 위치해 있다. 

 

지난 11월 2일 오후 지인의 소개로 충주시 엄정면 원곡리 사과농장에서 사과를 구입한 후 중앙탑 인근에서 막국수로 점심식사를 한 후 걸어서 이곳을 찾았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전사한 탄금대에서 2~3km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중앙탑사적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었다.탑은 언덕 위에 있었다. 본래부터 언덕에 세웠는지? 후대에 단을 쌓고 그 위에 다시 세운 것으로 다소 의심이 갔다. 

 

다음백과에서 "이 탑은 8세기 후반에 세운 것은 추정하고 있다. 높이에 비하여 너비의 비례가 적어서 지나치게 고준(高峻)한 감을 주며 안정감이 적어 보인다."고 했다.

 

이 탑을 보고 느낌이 많았나 어떻게 그 느낌을 들어낼가? 고민하다 겨우 이렇게 썼다.

 

여기가 중앙이라고  

남한강변에 우뚝 솟은 탑평리 7층 석탑

그 기상이 하늘을 찌른다.

 

대웅전은 온데 간데 없고

석등하대석(石燈下臺石)만이 

여기는 가람이라고 무언으로 가리키네

 

멀리서 보니

온전하구나 천년을 넘게

흔들림 없이 굳게 서 있의니 대단하다고 했더니.

 

가까이서 보니

상처가 보인다.

주름도 있다.

 

비바람에도 찢기고

찬서리도 할키고

혹한에 혹서에도 시달렸을 거라

 

자신을 희생하면서

세상을 밝히는 횃불이라

의로운 석탑이라고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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