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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한바퀴

역사가 있는 땅 화서2동

by 仲林堂 김용헌 2023. 5. 5.

 

화서2동은 선사시대의 꽃뫼제사유적이 있는 곳이다. 여기산을 끼고 서호천이 흐르고 있어 기름진 땅이라 사람 살기 좋은 곳이라 말할 수 있다. 수원화성을 축조하면서 많은 돌을 이곳 숙지산에서 캤다. 지금까지 돌을 떴던 흔적인 부석소가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정조는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저수지인 축만제를 화서2동에서 축조했다. 축만제는 농업발전의 디딤돌이 되었다. 그후 수원이 우리나라 농업의 요람이 되었다. 근래에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던 새마을 운동이 농민회관에서 시작되었으니 화서2동은 선사시대 이후 농업과 새마을운동의 요람으로 중요한 역사의 땅이라고 할 수 있다.

 

꽃뫼제사유적지

꽃뫼제사유적지는 팔달구 화서동에 위치한 유적으로 청동기시대의 구멍무늬토기편과 삼국·조선시대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1998917일 수원시의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되었다.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중요한 제사 유적지임이 확인되었다.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추석을 전후한 시기에 모든 주민이 참여하여 동제(洞祭, 마을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꽃뫼제사유적지이다. 이곳에서 제사관련 유물이 나왔다.

숙지산 채석장

숙지산 채석장은 화성을 축조하기 위한 성()돌의 채석이 이루어졌던 유적으로 팔달산과 함께 중요한 석재 공급원이었던 곳이다. 수원시에서는 20061226일 팔달구 화서2동 산41을 수원시 향토유적 제15호로 지정했다. 채석 흔적은 화성전철역 부근 KT&G 경기지역본부(구 연초제조창) 건너편 숙지산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숫돌같이 판판한 치도(治道)를 통하여 수레를 이용하여 화성 축성 장소까지 성돌을 운반했다. 채석 당시의 쐐기 자국이 여러 곳에 남아 있어 수원화성 축성 이해에 있어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숙지산 채석장이다.

축만제(祝萬堤)

축만제는 1799(정조 23)으로 당시로서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로 조성된 관개 저수지이다. 수원성을 쌓을 때 일련의 사업으로 내탕금 3만 냥을 들여 축조하였다고 한다. 179810월 시작하여 17995월 완공했다. 일제강점기 관광의 명소로 알려졌다. 예부터 낙조와 잉어가 유명하였다

 

축만제에서 D. S. 조든과 C. W. 메츠가 1911년 발견한 서호납줄갱 1마리는 전 세계에서 처음 발견된 신종이다. 2007년 일본 히로시시마현 후꾸야마시로부터 수원시에 보낸 공문을 보면, 후꾸야마시를 관통하는 아시다강에 서식하는 "스이겐지니타나고"가 서호납줄갱이로 확인되었다며 이 종의 고향을 찾아 합동조사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축만제 표석이 있고, 축만제와 여기산이 보인다.
축만제 낙조다.

농민회관

농민회관은 새마을운동의 요람이다. 1971214일 기공식을 갖고 그해 11월 완공했다. 농민회관 건설비용은 전국 농가에서 20원씩 모아서 건설했다. 당시 수원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이곳에서 19733월부터 19833월까지 550회에 걸쳐 77,851명이 새마을 교육을 받았다. 그 중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있다.

농민회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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