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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구회

화성연구회, 2023년 '비화가야의 땅 창녕과 문인의 고장 창원' 답사

by 仲林堂 김용헌 2023. 4. 9.

일행은 우포늪 둘레길을 따라 걸으며 해설사로부터 우포늪 조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거목으로 자라 수명을 다한 왕버들이다.
따오기복원센터 앞 늪에서 서식하는 따오기들이다.

 

일행은 창녕박물관에서 해설사로부터 늪에서 발견된 통나무배 설명을 듣고 있다.

()화성연구회(이사장 최호운)2023년 봄 답사로 '비화가야의 땅 창녕을 48~9일 화창한 봄 날씨에 회원 39명이 참석한 가운데 답사했다. 이번 주요 방문은 첫날 창녕에서 우포늪, 창녕박물관, 고분군, 관룡사(觀龍寺)를 답사했고, 둘째 날 창원에서는 이원수문학관, 김달진 생가와 문학관을 방문했다.

 

창녕은 '2의 경주'라 일컫기도 할 정도로 많은 문화유적이 발굴되었다. 그런데도 가야 문화는 신라나 백제와 비교해 덜 알려졌다. 창녕은 신라와 백제의 각축 사이에서 거점 구실을 할 정도로 중요한 지역에 위상이 높았었다. 창녕은 태백산맥을 등으로 삼고 서쪽으로 낙동강 건너 고령과 합천, 남쪽으로 밀양과 함안 등 주변 지역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요지였다.

 

일행이 맨 먼저 방문한 곳은 우포늪이다. 우포늪은 국내 최대 자연늪지다. 1997 7 26일 생태계보존지역 가운데 생태계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고, 이듬해 3 2일에는 국제습지조약 보존습지로 지정되어 국제적인 습지가 되었다.

 

우포늪 생태관 앞에서 사전예약한 해설사로부터 우포늪의 개황을 듣고 일행은 인원이 많은 관계로 두 그룹으로 나눠 시간이 많지 않아 4개의 코스 중 가장 짧은 1시간 코스(2.5km)를 선택했다. 주차장에서 400여 미터 탐방로를 지나자 우포(소벌)이 눈에 들어왔다. 겉으로는 저수지로 보이지만 물 가운데에 있는 백로 한 마리가 서 있는 것으로 보아 깊이 얕음이 짐작이 갔다. 물고기가 떼를 지어 헤엄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해설사는 "이곳은 물 반 고기 반이다. 수중에서 많은 생물이 있고, 이를 먹이로 많은 새가 찾아온다."라고 말했다. 아쉬운 것은 이곳에는 청둥오리, 노랑부리저어새, 큰기러기, 고니, 쇠오리 등 많은 철새가 온다고 하나 지금은 떠나고 없었다. 또 여름에는 잎 둘레가 2나 되는 가시연이 있으나 지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물가에 있는 왕버들의 새로 돋아난 연녹색의 잎새와 더불어 평화롭고  물 위 수평으로 펼쳐진 정취가 좋았다.

 

일행은 좌측으로 난 우포(소벌) 둘레길을 따라가면서 따오기복원센터까지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갔다. 대형 철조망 따오기복원센터 건물이 멀리 보였다. 복원센터 앞 경작하지 않는 논에 서식하는 여러 마리의 따오기가 눈에 들어왔다. 다음 일정이 있어 더 보지 못한 미련을 남기고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고분군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일행은 푸른 하늘에 햇살이 빛나는 상쾌한 날 교동고분군을 오르고 있다.

일행은 이동하여 창녕박물관에서 청동기시대 유물인 지석묘, 통나무배 등을 관람했고, 5~6세기로 추정되는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 금귀고리, 수저 등 수 많은 유물을 살펴보았다. 창녕 교동과 송현리 고분은 1911년 일본인에 의해 학계에 처음 보고되었고, 1918~191911기의 고분이 발굴되었으나 2개의 고분을 제외하고는 보고서가 발간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발굴된 유물은 마차 20대와 화차 2량 분량의 엄청난 토기와 금 세공품들이 출토되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고 한다. 일제 당국의 허가받은 발굴은 허가받은 도둑질이나 다름이 없었고, 금은 세공품이 쏟아지자 도굴꾼들이 달려들었고 수많은 고문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일행은 이어서 박물관 바로 앞에 있는 송현동 고분군 사이를 지나며 지금은 사라져 없어졌지만, 당시 많은 금귀고리 등 유물을 보았고 커다란 무덤을 보며 비화가야(非火伽耶)의 왕국을 상상하며 걸었다. 현재 남아 있는 고분은 30기에 불과하지만, 금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적어도 150기 이상이었다고 한다. 이를 보며 문화재 지킴이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일행은 도로를 건너 서쪽 편 교동 고분군에 올랐다. 푸른 하늘에 흰 구름 떠 있고 햇살은 빛나고 상쾌한 봄바람이 불었다.

 

일행이 관음사 가는 길을 오르고 있다.
약사전에 있는 고려시대 불상인 석조여래좌상이다.
대웅전 앞에서 일행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마지막 목적지로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구룡산 중턱에 있는 관룡사를 방문했다. 전설에 의하면 원효가 제자 송파와 함께 이곳에서 100일기도를 드릴 때 오색채운이 영롱한 하늘을 향해 화왕산으로부터 9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절 이름은 관룡사, 산 이름은 구룡산이라 했다고 한다. 타고 온 버스는 관룡사 전방 1.2km 지점에 주차하고 걸어서 제법 경사가 있는 길을 걸어 올라갔다. 부처를 만나는 길은 언제나 쉽지 않다. 오늘도 한참을 오른 후에 관룡사 천왕문에 도착했다. 관음사 뒤편을 보니 병풍처럼 암벽이 둘러쳐져 있고 절이 있을 만한 명당에 세웠지 아니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왕문에는 "관룡사 도솔합창단 창립"이란 현수막이 걸렸다. 이 현수막을 보자 관룡사가 비록 산골에 있지만 예사롭지 않은 활동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간판은 "한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는 관룡사"란 간판이었다. 그 내용은 "임진왜란 때 다른 건물은 다 불탔으나 약사전은 화를 면하였다며 약사전에는 영험한 기운이 있다는 소문이 퍼져 한가지 소원은 이루어진다고 전해지고 있다."라고 써 있다.

 

관룡사는 1,700여 년이나 되는 고찰이며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신라 시대 유물인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 약사전(보물 제146), 고려 시대 불상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19), 대웅전(보물 제1816),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대좌(보물 제1730), 관세음보살벽화(보물 1816) 등 보물이 6점이 있다

고향의봄 도서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달진 생가를 찾은 일행이다.

둘째 날에는 창원으로 이동하여 창원시 의창구 서상동 산 60번지 고향의봄도서관에 있는 이원수문학관을 방문했다. 이원수는 어린 시절을 보낸 추억을 '고향의 봄'에 담아 1926년 발표하여 아동문학에 입문했다. 고향의 봄은 홍난파가 곡을 붙여 '아리랑'과 함께 우리 민족의 노래로 불리고 있다. 그는 1935년 항일 문학모임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0개월간 옥로를 치렀다. 1936년 출소 후 수원 사는 기쁨사 동인 최순애와 결혼했다. 그는 아동문학계 거성으로 어린이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던 문학인이었다.

 

그 후 창원시 진해구 소사로 5913 소재 김달진문학관을 방문했다. 그의 문학관 앞에는 그의 생가가 있었다. 생가는 민속박물관과 같이 옛 살림 가구와 물품을 전시하여 향수를 자아냈다. 문학관에는 시의의 생애와 시가 포스터로 잘 정리되어 게시되어 있었다. 자필 원고, 유물과 유품,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김달진은 한학자이며, 승려이자 교육자였고, 시인이었다. 김달진의 딸 김구슬은 협성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사위는 수원에서 자란 고려대 국문과 명예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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