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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킴(지정 미지정)

앞을 막아버린 항미정 경관 복원이 필요하다.

by 仲林堂 김용헌 2022. 8. 25.

나혜석이 그린 서호 그림과 1920년대 항미정 사진이다. 항미정 앞에 시야가 확 터 있다.
현재 항미정에서 바라본 축만교다. 다리가 가려 저수지 풍경을 볼 수 없다.
항미정에서 겨우 여기산이 보이나 인공구조물에 의해 가려 자연의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는다. 여자의 눈썹 같은 모습이 서호에 빛추려면 인공시설물을 철거하고 현재 매립한 잔디밭도 저수지로 만들어야 한다. 경관을 고려치 않은 전등, 울타리 등이 제거해야 한다..

 

우리 선조들은 산수(山水)가 아름다운 곳에는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 축만제가 있는 항미정(抗眉亭)도 그런 곳 중의 하나다. 항미정이란 이름은  항주(杭州)의 미목(眉目)'같다는 소동파의 시(詩)에서 따왔다고 한다. 서호에 비춘 여기산의 반영은 여인의 눈썹과 같이 아름다웠다.

 

예전에는 많은 명사들이 항미정을 찾아 아름다운 산수를 감상했다. 그들이 수원을 방문하면 꼭 항미정을 찾았다. 순종황제는 1908년 능행차를 할 때 서호 임시정거장에서 내려 축만제 제방을 지나 항미정에서 차를 마시고 쉬었다. 안중근 의사가 살해한 이등박문은 죽기 1년 전 항미정에서 기념촬영을 하였고, 1932년 우기끼 조선총독도 항미정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노벨상을 수상한 식물학자 바비로프 일행도 1933년 항미정을 찾았다. 또한 수원 출신 학생이었던 박선태, 이득수 등은 1920년 6월 임순남, 최문순, 이선경 등 여학생을 규합하여 이곳에서 '서호 구국민단' 결성했다.

 

유명인사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수원의 명소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연인들은  찾는 단골코스였다. 많은 서울 사람들도 이곳을 찾았다. 나혜석 등 화가들은 항미정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그렸다. 

 

그러나 항미정을 요즘 찾는 이가 거의 없다. 찾는 사람은 대부분 서호공원에서 걷기 운동하는 사람뿐이다. 왜 항미정이 관광객으로부터 외면 받고 있을 가 생각해본다. 

 

지금 항미정 앞에는 콘크리트댐이 있고, 세멘트로 된 축만교가 시야를 막고 있다. 항미정에서 여기산도 보이지 않고, 서호도 볼 수 없다. 예전에는 항미정에서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었으나 지금은 아름다운 풍경 대신 인공시설물만 보일뿐이다. 시멘트로 만든 축만교는 미적인 고려가 하나 없이 안전에만 신경을 쓰고 만든 다리이다. 축만교가 항미정의 아름다움을 먹칠하고 있다. 

답답하게 막혀버린 풍경을 살리려면 옛 날로 돌아가면 된다. 하나의 방안은 현재 축만교를 철거하고, 항미정에서 축만제 저수지 물과 여기산이 잘 보이게 해야 한다. 다리를 새로 놓는다면 시멘트가 아닌 나무로 만들어야 하고, 그 장소도 항미정에서 보는 경관을 해치지 않는 현재의 위치에서 약 50미터 아래 지점에 설치해야 될 것이다. 경관을 해치는 인공구조물은 가능한 최소로 해야 할 것이다.    

 

 

또 항미정을 옆에서만 관람하는 게 아니라 예전과 같이 항미정 아래에서 볼 수 있게 하여야 하고, 그 모습이 예전과 같아야 한다. 그래서 항미정을 아래 먼 발치에서 위로 보며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 할 수 있어야 한다. 

 

항미정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나 항미정에서 바라 본 경치는 예전에는 자연스러웠으나 지금은 인공구조물로 꽉차 있어 아름다움을 상실했다. 항미정을 살리려면 항미정을 잘 가꾸는 것이 아니라 그간 훼손한 그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복원해야 한다. 그렇게하여 항미정이 옛 수원의 명소로서 자리를 되 찾을 수 있길 바란다. 

 

축만교에 있는 난간이 항미정을 가리고 있다.
세멘트와 쇠로 만든 축만교이다. 이 다리는 아름다움은 고려치 않고 안전에만 신경을 쓰고 세운 모습이다.

 

 

러시아의 식물학자며 노벨상 수상자인 바빌로프 일행이 항미정 방문 사진
축만교 이전의 옛 다리이다. 그 때 다리는 멋이 있었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사진촬영을 많이 했다.

  

 이 사진은 서호 수문 아래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이곳은 향미정 바로 아래 제방 밑이다. 지금은 향미정 바로 아래 산중턱으로 도로를 만들면서 자연석을 거의 수직으로 축대를 만들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웁기 그지 없다. 일제시대 향미정을 한국의 풍경 중 하나로 뽑았는데, 지금은 이 풍경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좌측은 새싹교 옆에 세운 나무로 만든 데크다리이고, 우측은 시멘트로 만든 새싹교이다. 이 다리 난간은 둘다 조형미가 있다. 새로 축만교를 건설하려면 좌측 다리와 같이 자연친화적으로 세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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