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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향교

항일독립운동의 연원인 결성향교(結性鄕校) 탐방

by 仲林堂 김용헌 2022. 7. 24.

성균관유도회 경기도본부 일행이 결성향교로 들어가고 있다.
외삼문이다.
북향을 한 명륜당이다.

많은 향교와 유도회에서는 선현의 가르침을 따르며 견문을 넓히고자 "선현지(先賢地) 견학"을 실시하고 있다. 성균관유도회 경기도본부(회장 이기도)는 관내 유림지도자 3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지난 720일 선현지 견학 차 충절의 고장 홍성과 예산 선현의 유허지를 찾았다. 그중 맨 먼저 찾은 곳은 충남 홍성군 결성면 홍남서로 707번길 21-8 결성향교(結成鄕校: 전교 이현조).

 

버스에서 내린 일행은 홍살문을 지나 외삼문으로 올라갔다. 대소인원개하마비(大小人員皆下馬碑)와 나란히 있는 結性鄕校(결성향교)라고 쓴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다. 외삼문을 지나자 팔작지붕 4칸 명륜당이다. 명륜당은 남향을 하지 않고 북향하여 대성전을 마주 보고 있는 게 남다르다. 명륜당 동쪽 처마에 북 하나가 매달려 있다. 명륜당과 대성전 사이에 있는 내삼문을 통과하니 공자님을 비롯한 5성위와 중국 4현위, 그리고 우리나라 18현 신위를 모신 대성전이다. 단정한 선비 같은 모습이다.

 

일행은 대성전 내삼문 앞에서 입배(立拜)4배를 했고, 이현조 결성향교 전교는 곡배(曲拜)4배를 했다. 이기도 회장은 헌관으로 환복(換服)하고 알자의 인도로 대성전 대성지성문선왕 신위 전에서 집사의 도움을 받아 삼상향(三上香)하고 헌작(獻爵)을 했다. 축관은 독축(讀祝)을 했고, 헌관은 원래 자리에 돌아왔고, 일행은 4배를 했다.

 

비록 지방향교라지만 모든 의례는 손색없었다. 대성전과 명륜당 건물에서는 오랜 역사와 전통이 묻어나왔다. 고개를 돌려 대성전 서쪽 담 밖으로 돌리니 600년 수령의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서 있다. 올곧은 결성향교의 절의를 지키고 있는 듯하다.

 

결성향교는 창건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1020년 고려 현종 원년에 세워졌다고 추정하고 있으며 1406년에 중건되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23(인조 1)에 다시 세웠으며,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짓고 고치기를 거듭했다. 명륜당에 걸린 판액을 보니 1914년 중수기 헌금자 이름이 빼곡하다. 헌성금자 수로만으로도 당시 결성향교의 활동을 얼마나 컸나 짐작이 간다.

 

결성향교에서 발간한 책자 중 1959125일 쓴 이원양 유림의 글을 보면 "유림의 향교가 일본인이 전답 수입을 임의로 차지하고 학생을 쫓아내고 유림의 입을 막고 향사를 올리지 못하게 한 지 26년이 지났고, 겨우 고직(庫直: 향교 잡일을 하는 사람) 한 사람이 수호하였으나 집은 비가 새로 바람에 날리며 대성전 보가 썩어가 위태로 웠다. 광복 10년이 지났으나 병화가 끊이지 않아 보수도 못 했다."라고 했다. 그런 역경을 딛고 지금은 말끔하게 충청남도 문화재로서 잘 보호받고 있었다.

 

충남대 김상기 교수는 "남당학파와 홍주의병"이란 제목의 글에서 홍성을 비롯한 내포지역은 기호학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율곡 이이를 종장으로 하는 기호학파의 학문이 김장생을 거쳐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김경여 등으로 이어져 왔고, 송시열의 학문은 한원진, 최징후 등 강문 8학사를 배출했다. 결성에서 한원진의 학풍은 김복한, 이설 등에 전수되어 위정척사(衛正斥邪)운동 내지는 항일민족운동을 일으키는 사상적 연원이 되었다. 이설은 문과에 급제하여 우부승지로서 고종을 보필했고, 1894년 일제 침략이 노골적이자 낙향하여 홍주의병에 참여했다. 김복한도 문과에 급제하여 동부승지로 고종을 측근에서 모셨으며 1984년 갑오변란 직전에 사직하여 낙향하여 1896년 홍주의병을 일으켰다."라고 했다.

 

그리고 "홍주의병은 1895-1896년과 1906년 두 차례 걸쳐 일어났다. 이 의병은 홍주지역의 유림이 주도하였고, 그중에서도 김복한과 이설 등 남당학파 유생들의 활동이 컸다. 이들은 19193.1운동을 주도했다. 김복한 등은 유림의 서명을 받아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이 독립국임을 선언하는 장서를 발송한 파리장서운동을 전개했다."라고 했다.

 

그는 "기호학파의 거두 한원진이 결성향교에서 수학했고, 그의 사상은 지산 김복한, 백야 김좌진, 만해 한용운 등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결성(結成)에 훌륭한 독립운동가를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올곧은 선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며, 선비정신은 향교를 통하여 이루어졌다."라고 말했다.

 

이번 답사를 통하여 결성향교는 항일독립운동의 발원지였으며 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유림으로서 선현의 올곧은 선비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일행이 명륜당 앞에서 봉심례를 기다리고 있다.
헌관이 삼상향하고 있다.
1914년 중흐기이다. 헌금자가 무려 244명이나 된다.
600년 묵은 소나무와 팽나무가 대성전 서쪽 담 넘어에 있다.
봉심 후 대성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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