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 화성지회(지회장 안소헌) 주최 김용창 애국지사 순국77주기 추모제가 선생의 출생지인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상두리에서 50여명의 참배객이 참석한 가운데 있었다.
이날 행사는 국민의례, 순국지사에 대한 묵념, 애국가 제창, 분향과 재배, 헌화 순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화성보훈단체협의회 윤재원 회장의 분향과 재배가 있었고, 그 다음부터는 단체별 헌화가 있었다.
헌화자는 광복회 화성시지회 안소헌 지회장, 이홍근 경기도도의원 당선자, 송선영 화성시의원 당선자, 김선영 화성시 문화관광교육국장 등 4인, 고정석 화성시문화원장, 공병완 향남읍사무소장, 김상중 발안농협조합장, 변용석 발안신협 이사장, 김영진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장, 김신중 향남읍주민자치회장, 김선근 향남읍발전협의회 회장, 김만중 상두리 리장, 김선근 향남읍발전협의회장, 광산김씨 수원화성오산지부 김영태 회원 등 3인, 광산김씨판교공파종회 김용오 회장 등 3인, 동화작가 한영미, 남부복지지관 실버밴드 등이 참석했다. 애국지사의 유일한 친동생인 김용무님은 고열로 입원하여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다.
끝으로 한영미 작가의 "내 아들 김용창"이란 시낭송이 있었다.김용창 애국지사의 아버지는 1945년 아들이 대전교도소에서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고, 열흘만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답니다. 아버지께서 대전교도소에 갔을 때 심경을 이야기 한 시로 듣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했다. 다음은 그 시의 일부다.
<내 아들 김용창>
용창이는 나의 첫 아들입니다.
나도 여느 아버지들처럼 아들 자랑을 한번 해볼 까요.
중략
경성 덕수상업학교 야간반에 입학했어요.
낮엔 학비를 벌고 밤에는 공부를 하겠다는 겁니다.
체신국 보험관리소 사환으로 취직한 것도
다달이 보내주는 편지와 용돈을 받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용창이가 경성에 간지 3년
꼬박꼬박 보내주던 편지가 끊겼습니다.
오즉 바쁘면 편지 한 통을 못 보낼까요.
나는 열심히 살고 있을 거라 민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에게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그러던 어느날
느닷없이 이상한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나는 한달음에 대전형무소로 내겨갔어요.
"김용창이 내 아들이오. 용창이가 왜 감옥에서 죽었소?"
김용창은 죄를 지어 감옥살이를 하다가 병에 결려 주었다."
아들이 죽어서 서러운데
죄인이라는 불도장까지 찍혔습니다.
용창이를 가슴에 묻고 남몰래 속으로만 앓았습니다.
누가 그 이름을 꺼내는 것도 달갑지 않았습니다.
혹시 누가 그 이름을 들먹일까봐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죽으면서도,
죽어서도 알 수 없는 분노와 서러움에 북받쳤습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을 까요?
50년만에 용창이의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경성 시내를 돌아다니며 이런 글을 썼다고 합니다.
조선 반도 2600만 동포여
자, 일어서라
조선 독립의 때가 왔다.
우리는 조신인이다.
조신인에게는 기백이 있다.
우리 힘을 모아 조선 독립을 쟁취하자.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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