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쉼 없이 흘러가고, 살아 있는 생명도 쉼 없이 생노병사의 길을 간다. 우리네는 노화란 골인을 향해서 단 하루도 멈춤이 없이 종점을 향해서 가고 있다. 그 길을 누구도 거역할 수 없으며 막을 수도 없다. 발버둥치면 단지 몇년 늦게 도착할 뿐이다. 그렇지만 가는 날까지 년식이 오래되었더라도 힘 좋게 고장 없는 차와 같이 갈 수 있고, 년식이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덜컹거리며 고장 잦아 어렵게 굴러 가는 차와 같게 갈 수도 있다.
나이 먹으면 아프지 않아야 한다. 나도 편하고 가족에게도 불편한 존재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 셋째도 건강이 제일이라고 한다. 건강의 비결이 걷기가 제일이라고 한다.
다들 걷기를 하고 있다. 나도 가능하면 매일 만보걷기가 일상이 되었다. 주로 서호(축만제)를 돌고 오는 것이지만 근래에는 축만제 외에도 여러가지 코스가 있다. 그제는 서호천을 따라 갔고, 다시 영화천을 만나 만석거에 도착하여 만석거 둘레길을 한 바퀴돌고 정자시장을 통과하여 집으로 왔다. 어제는 숙지산 정상에 올라갔다고 서문파출소 방향으로 내려와 다시 팔달산으로 가서 중산간 둘레길을 돌고 집으로 왔다. 오늘은 서호공원(축만제)에서 항미정에서 서호천을 따라 옛 서울농대 앞을 지나 평고교에 도착 후 돌아오는 코스다. 모두 도심이지만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코스다.
옛 서울농대 앞 도로 옆에 있는 보호수 고목이다.
서호천변 산책길이다. 냇가 제방 안쪽에 만든 산보길이다.길은 남쪽으로 이어진다. 이 다리는 옛 잠업시험장(우측)에서 옛 잠사박물관(좌측) 가는 길에 놓인 성자교(聖姿橋)이다.
서호천 위에 세운 댐을 막아 물길을 우측 농로로 가도록 했다.
앞쪽 댐에서 물길은 이곳 물막이가 있는 곳까지 와서 제방 좌측 농수로로 연결된다.삼남길이다. 삼남길 구포나루에서 화성행궁까지 25km 중 화성행궁에서 수원시농업기술센터가까지 황구지천까지 구간이다. 이 중 나는 화서역 앞에서 국립농업과학원 현위치까지이다.
서호천변 남쪽 SK의 발상지 간판이다. 여기가 최태원이 선경직물을 인수하여 창업한 곳이다. 수원에는 수원역 뒷편에 선경직물, 파장동에 선경합섬, 송죽동에도 선경공장이 있었다. 최종건의 동생이 최종원이고, 최종원의 아들이 현SK대표이사 최태원이다.
천변길 제방에 가로수가 오가는 이들을 환영하고 있는듯 하다.다리 하나가 보인다. 평고교이다. 한문으로 썼으면 그 뜻을 바로 이해 할 수 있을 텐데, 평고라고 하니, 그 의미를 알 수 없다. "평"은 평동을 뜻하는 것 같다. 잠시 지도를 검색해보니, "고"는 고색동을 뜻한다. 평동과 고색동의 첫 글자를 따 평고교라로 명명했음을 알았다. 하천 아래에 있는 산책길은 평고교 앞에서 끝난다.
이 도로는 수원에서 발안 가는 구도로다. 서호천 위에 세운 평고교이다.평고교에서 되돌아 만석거(서호) 방향으로 제방 위로 간다.다시 성자교를 만났다.聖姿橋(성자교)는 성스런 자태를 하고 있는 다리란 뜻이다. 이 다리를 건너면 옛 잠사박물관이 있었다. 이 다리 안쪽은 지금은 전주로 이전했지만 1910년대부터 100년이 넘게 잠업시험장이 있었다. 잠사(蠶絲)란 누에고치실을 뜻한다. 누에고치에서 명주가 나오고 명주실을 짜면 비단이 된다. 비단은 솜이나 합성섬유가 나오기 전까지 최고의 옷이었다. 누에가 인류를 위하여 공헌을 했음에도 인간은 누에를 죽여 이용만 했으니, 이를 반성하고 누에에게 죄송한 마음을 금치 못하며 그 거룩한 희생을 받들고자 누에에게를 성스런 자태라고 다리 이름을 지은 것이다.수양버드나가 풍치를 더하고 있다. 수양버드나무는 물가에서 자라는 나무로 식목한 것이 아니라 자생한 것이다.
옛 서울농대 앞 다리를 지나면서 동쪽편 제방위로 걷는다. 옆에 보이는 논은 서울대학교 농학과 벼재배시험포장이다.향미정을 지나 축만제(서호) 제방 위로 걷는다. 많은 사람들이 서호공원 둘레길을 돌고 있다. 노송이 있어 한 폭의 그림같은 풍경이다. 한진현대아파트에서 삼남길을 따라 평고교까지 돌아오면 만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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