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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족 이야기

우리 가족 화암동굴 탐방(1)

by 仲林堂 김용헌 2021. 7. 4.

음력으로 지난 5월 14일이 처의 칠순 날이다. 일요일인 5월 20일 점심식사를 했지만 자식들이 해외 여행은 못가더라도 국내 여행이라도 하자 해 강원도 태백 하이원리조트에 숙박을 예약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며칠 전 왼쪽 눈이 망막부종이란 진단을 제일안과에서 받고 성빈센트병원에 다음 주 진료예약하면서, 내 마음은 가라 앉아 어디 놀러가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안 가겠으니 집사람이나 잘 다녀 오라고 했다. 그런데 큰아들이 그 소식을 듣고 간곡하게 같이 가자고 해서 할 수 없이 마음을 바꿔 이번 여행에 참가했다.

 

어린이는 사소한 것에도 흥미가 있고 장난기가 끊임없이 나온다. 오랫만에 만난 비슷한 또래의 지유와 재훈, 재율이는 발랄한 생기가 돋는 어린이다. 그리고 큰손녀 다연이는 중3으로 어린이를 지나 청소년으로 키만큼이나 성숙했다. 밤잠 안 자고 중간고사를 치렸다고 하니 성(誠)을 다하는 게 대견하다. 또 중년 가장으로 사회인으로 역활을 다하고 있는 반듯한 한 두 아들이다. 그리고 두 아들 못지 않은 성실한 두 며느리이다.

 

근래는 서로 따로 살기 때문에 만남이 쉽지 않아 가족도 제 살길만 쫒다보면 멀어지기 쉽다. 이런 여행하며 서로 부딛치며 함께하는 시간은 가족애를 다지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나는 몸이 이상이 있고 마음도 상처를 받았으나 다시 가족을 만나니 반갑고 잘 한것 같다.   

 

사서(四書)의 대학(大學)에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했다. 수신이 먼저 있고 마지막에 평천하가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수신(修身)이란 자신이 갈고 닦는 일이다. 그 다음은 가족을 반듯하게 하는 제가(齊家)이다. 그리고 제가 후에 치국이며 나아가 평천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일이란 첫째가 자신에서 출발하고 그 다음이 가족이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자식은 따라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을 돌아보면 특별히 남보다 우월한 것은 없었고 크게 성취한 것은 없었지만 다만 성실(成實)하려 했다. 우리 가족의 제가(齊家)는 두아들과 두며느리 자신들이 알아서 각자 본분을 다하고 있으니 저절로 제가(齊家)가 되지 않나 싶다.

 

7월 3일 아침 6시반에 집을 나서 용인 수지에 사는 아들 집에 7시 10분경에 도착하여 아들 차와 며느리 차로 떠났고 서울 사는 둘째 아들 가족은 첫 행선지인 화암동굴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첫 행선지가 강원도 정선군 약수길 1330 화암동굴이다. 나도 왼만큼 여행하여 국내 명승지는 모르는 곳이 거의 없고 안 가본 곳도 많지 않은데 화암동굴은 처음 듣고 초행이다. 주차장이 꽤 넓은게 관광객이 제법 많은 듯해 보였다. 

 

이곳 동굴은 일제 강점기의 금광을 관광객의 입맛에 맞게 역사의 현장, 금맥따라 365, 동화의 나라, 금의 세계, 대자연의 신비 등 테마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흥미를 끌수 있게 만들었다. 금 광산과 자연동굴이 함께 연결되어 있는 동굴이다. 처음 515미터 구간은 금광맥 발견부터 금 채취까지의 과정의 모형물을 설치하여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마지막 구간에는 석회석 자연동굴로 여러 종류의 종유석을 관람할 수 있게 했다. 관람 소요시간은 1시간 반이 걸린다고 말하다.

 

우리 가족은 10시 40분경에 주차를 하고 대기실에 입장했다. 관계자는 관람시간은 11시부터라고 했다. 잠시 기다려 11시 정각이 되지 입장을 시켰다. 수평 갱도를 따라 가며 좌우에 광부들의 금을 캐는 일련의 작업과정을 모형물로 조성해 놓았다. 금을 깨는 광부라며 일확천금을 쫒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족을 위하여 살기 위하여 목숨걸고 이 세상 가장 밑 바닦 막장 인생의 삶을 현장이었다. 고달픈 삶을 살았던 그 시절 광부의 인상 깊은 모습이 있어 담아 보았다. 여름인데도 지하 동굴이라 서늘하며 춥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굴입구까지 가는 길은 걸어서도 갈 수 있지만 모노레일을 타고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우리 가족은 모노네일을 탔다. 무엇인가 타고 가면 좋다. 특히 어린이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좌측으로부터 큰손녀 다연, 처, 며느리, 큰아들이다.

 

볼거리를 많이 만들어 놓은 동굴이다.

 

광부들의 금을 캐는 장면을 조형물으로 만들어 놓았다.

 

목숨을 걸고 먹고 살려 돈을 쫒아 이곳에서 일했던 그 광부들을 떠올랐다.

 

고달팠던 그들의 삶이다. 지금은 나라가 잘 살으니 노동자들도 노동의 가치를 존중받고 있지만 나라없고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 시절에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도구였을 뿐이었다.
큰손자 재훈이가 굴삭기를 작동해보고 있다.

 

둘째 손자 재훈이는 마냥 즐겁다.

 

 

이곳이 노다지가 쏫아져 나왔던 곳이다. 사진으로 그 크기를 짐작이 어렵지만 이곳은 높이 50m가량으로 넓었다. 얼마나 많은 광부들이 여기 노다지를 깨다 목숨을 잃었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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