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세상이 발전하여 4차 산업시대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수천년간 농경의 1차산업에 머물렀고, 공업화의 2차 산업으로 발전한 것은 겨우 50년 전인 1970년대초 이다. 그 때만해도 먹을 게 없어 초근목피에 물 한 모금 마시며 살았던 보리고개가 있었다.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니 농민의 위상도 높았다.
농민회관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성로 92에 소재하고 있다. 이 건물은 1971년 2월 14일 기공식을 갖고 그해 11월 완공했다. 농민회관 건설비용은 전국 농가에서 20원씩 모아서 건설했으니 지금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에는 건설비 조달 방법만으로 보아도 그 만큼 농업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나 짐작이 간다. 이 공사는 전국적 관심을 끈 큰 공사였다. 당시에는 수원시에서 가장 높은 최신식 건물이었다.
우리나라는 70년대초는 공업화가 시작되면서 배고품에서 벗어나고 있던 시대였다. 이제 가난에서 벗어나 우리도 잘 살아보자는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새마을운동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새마을지도자연수원이었다. 이곳에서 1973년 3월부터 1983년 3월까지 550회에 걸쳐 77,851명이 새마을 교육을 받았다. 그 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있었다. 정치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 이념으로 새마을운동으로 삼았고, 새마을 운동의 중심이 농촌진흥청 농민회관에 있었다. 새마을 운동의 흔적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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