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수원박물관 내부 전시 유물을 보며

by 仲林堂 김용헌 2020. 1. 19.

박물관 유물은 죽은 것이거나 무생물이라서 살아 있는 생물에 비하여 실감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박물관은 먼저 간 사람들이 남겨 놓은 지혜의 창고라고 할 수 있다. 박물관의 유물을 통하여 온고지신(溫故知新)을 할 수 있다. 


오늘 수원박물관에 관람은 먼저 실외 유물을 관찰했고, 다음 내부 유물관람이다. 먼저 2층에 있는 수원역사박물관을 찾았다.



수원의 인물이다.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분들이다.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水原 彰聖寺址 眞覺國師塔碑)이다. 이 비는 2층 박물관 로비에 있는 것으로 보아 수원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로 보인다.


고려 말 승려 진각국사 천희(千熙)의 탑비이다. 진각국사 천희는 1307년(충렬왕 33)흥해*경북 영일군 지역)에서 태어나 1319년(충숙왕6)에 출가하였다. 1325년(충숙왕 12)에 승과에 급제하여 김생사·부인사·개태사 등에 머물렀다. 1364년(공민왕 24) 중국 원(元)나라에 유학을 다녀온 후 1367년(공민왕 27) 국가(國師)에 봉해졌다.  

수원이란 이름은 1271년(고려 원종 12)에 수주가 몽고군을 물리친 공로로 수원도호부로 승격되면서 처음으로 수원이라고 사용했다.


정조 때 수원은 이 지도에서 보면 읍치가 수원 시내가 있는 곳이다. 지금의 융건릉이 있는 곳이다. 정조는 수원을 이곳 읍치에서 팔달산이 있는 현재의 수원으로 옮겼다.


좌측은 『대학』이고, 우측은 『논어』이다. 논어 중에서 옹야, 술이, 태백, 자한, 향당편이다. 이 책의 주인은 알 수 없지만 책이 낡은 것으로 보아 수 백번 읽었지 않았나 싶다.


천자문이다. 竹村이 쓴 천자문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인사발령장인 교지다. 한량(閑良) 이용숙 무과 병과 1,587등으로 합격자이다. 광무19년은 1913년이다.



수원향시에서 치러진 합격자 명단이다. 3下로 합격한 이방의 교지이다. 나이는 20세, 본은 전주, 부친은 좌랑이고 이름은 서○다.



향시 합격자 송광동이다. 나이는 24세, 본은 여산이고 거주는 삼미면, 부친은 학생이며 송계이다. 살 4말이다. 쌀은 아마 부상으로 준 것 같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 탄신일을 맞아 지은 시다.


위 한시를 번역한 것이다.


수원8경 중에 있는 한시이다. 우측부터 신풍루에서, 팔달산 병풍바위, 동쪽 봉화에서이다.



우측부터 장대에서 활쏘기, 방화수류정에서, 용연에서이다.



수원8경은 봄 8경이 있고, 가을 8경이 있다.


설명은 아래에 있다.





영조가 정조에게 준 유훈이다. 설명은 아래에 있다.



집안에서 효제하고, 밖에 나가서는 충신하라. 옛 사람의 큰 덕목이다.


수원박물관은 지역 소재 박물관으로 유물 취득과 기탁에 제한이 있어 어려움이 크다.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비교할 수는 없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우리 지역에 소중한 유물은 잘 보존하고 전시하지 않나 생각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