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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김삿갓 유적지 방문

by 仲林堂 김용헌 2019. 10. 26.

수원향교 유림 일행과 함께 10월 24일 김삿갓(김병연) 유적지를 방문했다. 이곳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지금은 면의 이름을 김삿갓면으로 고처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897-2이다) 는 산자수려한 고산준령 풍운 속에 청운의 푸른 꿈을 접고 해학과 재치와 풍류로 한 세상을 살다간 조선 후기 방랑시인이자 천재시인인 김삿갓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난고 김병연 묘소와 주거지가 있다. 난고 김병연 선생은 원래 전라도 동복(지금의 전라도 화순군)에서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를 찾아 전국을 떠돌던 둘째 아들 익균이 주거지인 하동면 노루목 바로 이 곳 골짜기에 묻어 주었으며, 그의 묘소는 1982년 영월의 향토사학자 정암 박영국선생의 노력으로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김삿갓 김병연은 김조부의 행적을 모르고 자랐던 선생은 20세 때 영월동헌에서 열리는 백일장에서 “홍경래난 때, 순절한 가산 군수 정공의 충절을 찬양하고, (홍경래의 반란군에게) 항복한 김익순을 규탄하라.”(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는 시험 제목의 향시(鄕試)에서 장원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로부터 김익순이 조부라는 것을 알게 되자 조상을 욕되게 하여 하늘을 쳐다 볼 수 없다고 삿갓을 쓰고 방랑생활을 하며 벼슬길을 포기하였다. 그후 김삿갓은 57세로 객사할 때까지 전국 각지를 떠돌아 다니면서 방랑 걸식하였다. 지친 몸으로 말년에 들른 곳이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였는데, 그곳 명소 "적벽(赤璧)"에 매료되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이 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훗날 그의 차남이 영월 고향 땅으로 이장하여 이곳 김삿갓묘에 안치하였다.


김삿갓 유적지는 첫 방문이다. 하동면을 김삿갓면으로 바꾸기까지 했으니 볼만한게 많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우리 일행이 방문한 곳 묘소 일원에는 시비(詩碑) 여럿 있으나 그렇게 인상이 남는 것은 없었다. 이곳 묘소에서 김삿갓 주거지는 1.8km이다. 우리 일행은 일정상 그곳까지는 가지 않아 볼만한 것을 놓쳤는지 모른다.


김삿갓은 시선이라고 칭할 정도로 재주가 많은 사람이지만 때를 잘 못 타고 사람이다. 그는 수 많은 시를 남겼다고 하지만 걸식하면서 어렵게 살다가 객사로 죽은 사람이다. 비록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고 하지만 그가 살았던 삶이란 현실을 개탄하며 울부짓은 인생이었으리라. 그 자신은 괴로운 삶이라고 한 평생을 살았지만 후세 사람들은 진정 자유인으로 살은 멋진 사람이라고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곳은 김삿갓 묘역이다. 주거지는 이곳에서 1.8km가야 한다.



강릉의 관광지다. 장릉, 아라언, 청령포, 선돌, 한반도지형 등 경치 좋은 곳이 많다.


스므나무 아래 설은 손이요

마흔 집 가운데 쉰밥이다.

인간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오

집에 돌아 가 설은 밥 먹는 것만 못하다.


어느 집에 가서 밥을 달라고 하니 쉰밥을 내놓기에 개탄한 시다.

이십수는 스무나무이름이고

삼심색은 설흔(슬픈) 나그네

사십가는 마흔(망한) 집

오십식은 쉰밥

칠십사는 일흔(이런)일

삼십식은 설흔 밥이다.


해석은 아래 사진에 있다.


해석은 아래에 있다.









해석은 아래에 있다.




묘소에 우리 일행이 둘러보고 있다.


시선(詩仙) 란고(蘭皐) 김병연의 묘다. 김병연은 본명이며 김삿갓은 별명이다. 호는 난고(蘭皐)이며, 시선(詩仙)은 시의 신선(神仙)이란 이름으로 또하나의 사람들이 그를 높게 부르는 별칭이다.

 

망주석도 비스듬하게 세운게 김삿갓 묘 답다.

 

김삿갓 묘가 있는 이곳이 버들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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