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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화진포 이승만 대통령 별장과 기념관 방문

by 仲林堂 김용헌 2019. 10. 18.

강원도 고성 화진포에서 이승만 대통령 별장과 기념관이 있다. 우리 일행은 10월 15일 화진포에서 김일성별장으로도 알려진 "화진포의성"과 "이기붕 별장"을 관람하고 차로 2-3분 거리인 이곳을 찾았다. 이승만 별장은 볼거리가 많지 않았으나 별장 바로 위에 있는 "이승만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에는 많은 유물과 함께 기록, 영상물 등이 많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문과 한시를 배운 한학자로 남긴 유물 중에 한문 휘호가 많아 유학을 배우는 우리 일행에게는 볼거리가 많았다.


주차를 하고 일행이 이승만 별장으로 올라가고 있다.


별장에서 바라 본 화진포 호수다. 이곳에서는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별장 집무실에는 이승만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가 앉아 있는 인형모형이 있다.


鴨綠豆滿唾手完還 압록강과 두만강을 손에 침뱉고(어떤 일을 꼭 해내고 싶을 때 손에 침을 뱉고나서 일을 한다) 완전히 (빼앗긴 땅) 찾아 오라.  丙申元旦 병신년은 1956년이고, 원단은 1월 1일이다.


忠貫日月 충성은 해와 달을 관통한다. 그 옆에 智勇兼仁百戰不勝은 지혜와 용기가 있으면 어짐(仁)을 가지고있으면 백번싸우면 모두 이기지 않겠는가?이다.


望第三軍團 北進統一 "제3군단에게 바란다". "북진 통일을"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나라 국방이 어느 정도인가를 잘 알지도 못하고 북진통일을 이룩하라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남한의 군사력은 남침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되었듯이 북한에 비하여 아주 열세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사용했다는 여행용 가방이다. 지금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좋아 보인다.

 

도포 옷고름이 간편한 단추식이다.


육해공해병대 장병일동이 이승만대통령에게 받친 "자기 방패"이다. 거기에 쓴 글 내용은 아래와 같다.

새해를 맞이하여

각하 내외분의 만수무강을 기원하오며

각하의 숙원이신 북진 통일을 완수할 것을 맹세하나이다.

4292년 1월 1일

육해공군해병대 장병일동


이승만을 위하여 북진통을 하겠다니 참으로 실소를 금치 못한다. 이승만 대통령 주위에는 이렇게 아부하는 간신배들이 많았음을 여기에서도 볼 수 있다. 다른 면으로 보면 이승만은 아부하는 사람들을 좋아 했기 때문에 간신배들이 많았을 것이 아닌가 본다. 이승만 대통령은 진정 국민을 위하여서보다는 자신의 영광을 위했기 때문에 이런 출세지향의 간신이 따랐을 거라 생각된다. 



이승만기념관 입구 벽에 걸린 한시 오언절구 2편이다.


누군가 번역했으나 내 생각과는 다른 점이 있어 아래와 같이 번역한다.


焉敎花與月 無晦又無秋 花月長春國 人無白髮愁

[春日戱題] 

어찌 꽃과 달로 하여금 깨닫게 할 수 있을 가?

그믐도 없고 가을도 없게 한다면

꽃과 달은 춘국(성장하기만 하는 나라)이 되고

사람들은 백발의 근심을 하지 않을 텐데...


제목은 [봄날에 장난 삼아 짓다]이다.



樑鷰嘲翁懶 庭花笑客忙 鷰嘲花笑裏 各自弄春光

[晩春偶唫]

대들보에 앉은 제비는 게으른 늙은이를 조롱하고

뜰에 핀 꽃은 바쁘다는 나그네를 보고 웃네.

제비는 조롱하고, 꽃은 속으로 웃는다.

서로 각기 봄경치를 희롱한다.

제목은 [늦은 봄에 우연히 읊다]


3연에 1연과 2연에 있는 같은 글자(鷰,嘲,花,笑)가 반복되어 좋은 시라고 볼 수는 없다는 내 생각이다.


이승만대통령화진포기념관은 비교적 작아 다소 옹색하다고 할 수 있지만 여러 유품이 많고 잘 전시되어 있었다.


國富兵强 永世自由

"나라가 부자가 되고, 국방은 강하고, 영세토록 자유를 누리자

丁酉元旦(1957년 1월 1일) 雩南(우남)


오른쪽이 서당에서 공부하던 시절 이승만이 부친 경선공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그 때 이승만은 선생님 앞에서 배우고 익힌 글을 암송하는 도강(都講)에서 늘 장원을 했다고 한다. 그는 서구 교육을 받기 전 어렸을 때 한학을 많이 배웠다.

 

새로운 학문의 필요성을 강조한 글인 "務興新學論"이다.


상해임시정부에 매월 1천달러 이상을 보냈고, 미국과 유럽에 한국친우회를 조직하여 1920년 3월 17일 미상원본회의에 한국독립 승인안이 상정되었다. 그러나 통과시키지는 못했다고 한다. 앞쪽 지팡이를 집고 있는 사람이 이승만이고, 뒤줄 왼편이 서재필이다.


이승만은 58세 때 33세의 프란체스카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이박사의 타이프에 능숙한 비서로 아내로 독립운동 동지였다.


좌측 위는 시카고 한인들과 기념촬영, 그 아래는 상해임시정청,  그 옆에는 여러 이박사의 친필 글이다.


民惟邦本 本固邦寧 백성은 오직 나라의 근본이고, 근본이 튼튼하면 나라가 편안하다.


健民輔國 백성이 건강하고 나라를 돕자


邦舊命新 " 그 아래 작은 글씨로 祝 5月 10日 總選擧 李承晩


邦舊命新은 나라는 오래나 천명은 새롭다."는 직역이다. 아래의 글에서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유영익 박사가 쓴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비전』에서 “이승만은 1948년 5월 총선거를 기해 ‘방구명신(邦舊命新)’, 즉 ‘나라는 오래지만 명은 새롭다’는 휘호를 남겼다."고 했다. 유영익 박사는  "이 ‘새로운 명’이란 기독교 하나님의 명을 의미한다”며 “이승만은 기독교라는 새로운 정신적 토대 위에 새 나라를 건설할 것을 염원했다."고 했다. 새로운 명이란 "미국 등 서구와 같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平天下之道 『대학』장구에 나오는 8강령 중 마지막 장구로 "천하가 태평하게 되는 도"이다. 그 도(道)란 "格物而後에 知至하고 知至而後에 意誠하고 意誠而後에 心正하고 心正而後에 身修하고 身修而後에 齊家하고 齊家而後에 國治하고 國治而後에 天下平이다."까지 해야 한다. 

  

醫治病世 병든 세상을 잘 치료하고 다스리라


 和樂 화평하고 즐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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