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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중국(태안, 곡부, 칭따오)

공부(孔府) 관람

by 仲林堂 김용헌 2019. 6. 6.

우리 일행은 공묘孔廟) 동문으로 나와 취에리호텔 옆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식당 이름이 우리 일행의 이름에 걸맞게 "유림찬청"이다. 일행은 점심 후 오후 1시 반에 공부(孔府) 정문으로 입장했다. 공부(孔府)는 공자 후손의 관청이며 자손들이 거주하는 저택이다. 공묘와는 담 하나 사이로 공묘 동문에서 나와 관광상품 가게를 지나면 바로 공묘 입구이다. 

 

예전에는 연경공부(衍聖公府)라고 했고, 지금은 공부(孔府)라고 부르고 있다 규모가 고궁에 버금가는 귀족 저택이다. 그 면적이 7만평방미터이고, 사당, 누각, 대청 등 건축물이 총 463칸이다. 공부(孔庙)가 보관하고 있는 문화제가 많은데, 그 중 제일 유명한 것은 상주십기(商周十器)”이다. 원래는 궁전에서 보관 사용된 청동으로 만든 관혼상제 등 연회에서 사용된 기물로써, 건륭(乾隆)황제가 하사한 물품이다.

 

우리 일행은 대문(大門), 이문(二門), 중광문(重光門), 대당(大堂), 이당(二堂), 삼당(三堂), 내택(內宅), 내택문(內宅門), 전상방(前上房), 후당루(後堂樓), 화청(花廳)를 관람하고 성밖으로 나왔다.

 

공자의 후손은 중국의 최고 귀족 가문이라 할 수 있다. 자랑스런 혈통으로 명예와 부귀를 다 누린 가문이다. 다른 어느 성씨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관청이 집안에 있고 자손이 살 수 있는 저택이 있는 중국에서 최고의 가문이다.

 

 

공부 정문 대문(大門)이다.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고 있다. 정문 두 기둥에 아래와 같은 주련이 있다.  

與國咸體安尊榮公府第(나라와 다 함께 편안함과 부귀함을 누리는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공자의 집안 )

同天幷老文道德聖人家(나라와 함께 늙어가며 문장과 도덕이 있는 성인 집안)

공부는 사람이 사는 곳으로 후손들에게 가르침을 표현한 주련이 많다. 주련 모두 빨간 바탕에 검은 글씨로 썼다.

 

 

尊에서 富에 점이 하나 빠져 있다. 누군가 점을 찍어 놓은 흔적이 보인다. 글자가 틀렸지만 공자의 집안에서 쓴 글을 시비하는 사람은 없고 사람들은 "富貴无頂(부귀는 끝이 없다)라며 좋은 의미로 해석 하고 있다.

 

 

"文章"에서 "章"자가 열십자에서 세로 그은 것이 설입변까지 올라가 있다. 틀린 글자가 분명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두고 문장이 하늘에 닿았다는 "文章通天" 으로 좋게 풀이하고 있다. 

 

 

정부에 있는 현판 "聖府"이다.

 

 

명나라 때 세운 孔府二門(공부이문)이다.  이문 뒤에 중광문이 보인다. 다음과 같은 주련이 있다.

萬家承乾 歲歲春光寒轉暖 (모든 가족이 하늘을 받드니 해마다 봄 빛은 차거움을 따뜻하게 바꾼다)

三陽開泰 年年淑景去還來 (석달 봄볕이 태평한 시절을 여니 매년 맑은 경치가 가면 다시 온다)

 

 

二門(이문)의 현판 "聖人之門(성인지문)"이다.

 

 

중광문 앞에서 일행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문 위에 "은사중광"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 편액은 명나라의 제11대 황제인 ‘가정제’ 친필이다.

 

 

일행은 중광문을 지나 대당(大堂)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곳은 연성공(衍聖公)의 집무실 책상이다. 책상의 크기로 보아 그 벼슬이 얼마나 높았나 짐작이 간다.  송나라 때 인종은 공자 46대손인 공종원(孔宗願)을 자손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벼슬인 연성공(衍聖公)에 봉해 취푸 지역을 다스리게 했다. 연성공은 황제가 내린 벼슬 이름이다. 그 벼슬은 대대로 후손에게 물려줘 1935년까지 이어졌다.

 

 

대당 내부 집기들이다. 비켜라(廻避), 정숙(靜肅)하라. 공부의 관리의 위엄이 짐작이 간다. 

 

 

대당 후원에 있는 괴석이다. 중국에는 물속에서 나온 괴석을 보물로 생각하여 명승지에 이런 돌이 많다.


이당을 지나 삼당(三堂)이다. 이곳에서 연성공이 4품이상의 관원을 접견하던 곳이다. "6대가 같이 엿을 먹는다"는 六代含飴(육대함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화목한 가족이란 뜻이다.
삼당을 지나면 內宅門(내택문) 목판에 계탐도(戒貪圖)이다. 몸은 기린 형상이고 머리는 용 모양이다. 태양을 삼키려고 한다. 태양을 삼키게 되면 바다에 떨어진다고 한다. 후손들에게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벽화이다.
우리 일행도 욕심을 탐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우리 일행이 후오당 앞에서 영상화면을 보면서 잠시 쉬고 있다. 
공부대전(연극) 공연안내판이다. 우리 일행은 시간이 맞지 않아 연극을 보지 못했다.후화원 정원이다.
후화청(後花廳)이다. 이곳에서 공씨가문에서 상업적으로 작명 등을 하고 있다.
연꽃 정원이다.
공부 관람을 다 마치고 나가는 문(출구)이다.

 

 

이곳에서 동쪽 방향으로 100미터쯤 가면 공림가는 셔틀버스를 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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