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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수원박물관 야외 전시 유물

by 仲林堂 김용헌 2018. 12. 26.

박물관은 예전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나이가 먹으면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이 더 가깝게 느끼게 되니 친근감이 생긴다. 


나는 정년 퇴직 직후 박물관 해설사가 되려 했었다. 해설사 모집 공고문을 보고 원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러 경기 수원시 영통구 창룡대로 265 수원박물관에 왔으나 접수 담당자가 자격 미달이라고 해 접수조차 못한 일이 있다. 그 때 느낌이 좋지 않아 더 이상 해설사에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 후 수신(修身)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하고 한시, 논어, 대학, 사진, 글쓰기 등을 배우고 있다.



오늘은 다시 수원박물관을 관광 목적으로 방문했다. 먼저 야외에 비석, 서낭당, 정려 등 전시물을 사진촬영을 했고, 서예박물관에서 옛 글을 촬영했다. 시간이 되면 촬영해 놓은 유물의 내용을 살펴보려 한다. 


 

야외 전시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비하면 소규모이며, 선정비, 서낭당, 약사불, 정승, 비석, 돌방아, 고인돌 등이고, 보물급은 없었다. 그 중에서 서낭당, 약사불, 정려가 볼만했다. 


돌무덤 같이 보이는 것이 서낭당이다. 성황당(城隍堂)이라고도 부른다. 나는 그간 성황당은 당집이 있는 건물인 줄 알았으나 이번에 표지판 설명을 보니 돌무덤이 서낭당이라고 알게 되었다. 장승 이름이 南方遂鬼 天下大將軍이다. 남쪽을 맡은 귀신이란 南方遂鬼가 이름이 더 붙었다. 



지방 고을 관아 앞에는 많은 관아의 수장이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는 선정비가 무수히 많다. 여기에도 많은 선정비가 있다. 화성박물과 앞 뜰에도 많은 선정비가 있다. 순수하게 선정을 베푼 수장도 있겠지만 백성을 수탈하는 관리가 더 많았다. 다른 한편 선정비는 아첨의 징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선정비이다.



수원고을은 수원유수부라고 했다. 유수부는 임금이 직할관리하는 지역이다. 留守 閔公泳商 永世 不忘碑이다. 수원 유수 민영상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는 비석이다.



留守 金相公 弘集 淸德 善政碑이다. 相은 정승을 뜻한다. 유수이며 宰相인 김홍집은 깨끗하고 덕이 있고 선정을 베풀었다는 비석이다.

 

묘 비석이다. 사람 모양 석물은 문인석과 무인석이다. 우측편 앞에 있는 비석이 묘표이다.

 


이 약사불은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숙지산 다산도서관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다고 한다.



효자 정려이다. 위는 유태명의 정려이고, 아래는 유태명의 증손자 유의의 정려이다. 위에 있는 유태명은 통정대부로 품계가 정3품 우승지(右承旨)로 지금으로 보면 청와대 비서관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을 보필하는 비서가 도승지 등 6명이 있었다. 우승지는 그 중 하나이다. 아래에 있는 증손자 유의는 품계가 가선대부로 종2품 호조참판으로 행자부차관 급이다. 두 분의 정려를 따로 세울 수도 있으나 편의상 직계 자손이라서 하나의 정려각에 2개의 정려현판을 걸었다. 정려는 사람들이 본 받을 수 있게 많이 볼 수 있는 길가에 세웠다. 정려문 앞에 홍살문이 있다.  





고인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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