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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향교

나주향교 이모 저모

by 仲林堂 김용헌 2018. 10. 26.

수원향교 유림 일행과 함께 10월 25일 오후 나주향교를 방문하여 대성전, 명륜당, 충효당 등 여러 곳을 살펴 보았다. 나주향교는 고려 성종 6년 987년에 세웠고, 조선 성종 11년(1480년)에는 이곳에서 공부한 학생이 대과에 10명이나 합격하는 경사가 있었다. 이와 같이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는 향교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교육시설인 충효당을 보면 아직 옛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주향교 표지 입석과 외삼문이다.


일행인 나주향교 협문 방향으로 들어 가고 있다.


나주향교 안내표지판이다.


각종 비석이 향교 옆에 있다. 이 비석은 유구한 향교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5칸 팔작지붕의 대성전이다.


뒤편에 동무이다. 대성전은 규모가 크나 동무와 서무는 작았다.

 

대성전 대성지성문선왕 신위, 제상, 향로, 향탁이다.


향로와 향합이다.


계단  돌이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화강암은 쉽게 부서지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남아 있다. 반면 목재는 오래 가면 썩고 부서지며 화재로 인해 타버려 없어 진다.  


보물 394호 나주향교 대성전 표지석이다. 전국의 향교 중 보물로 지정된 대성전은 몇이 안된다.


고유 봉심례에 참례한 수원향교 일행이다.


집례가 월대 동쪽에서 서립하여 홀기를 창홀하고 있다. 집례가 창홀을 아주 잘 했다.


집사와 참례자들이다.


대축이 축을 독축하고 있다. 헌관은 부복하고 있다.


대성전 월대이다.


주춧돌이 연꽃 문양이다. 아마 불교가 흥성했던 고려 시대라서 연꽃 문양의 주춧돌을 했지 않을 가 생각된다.


일행이 봉심 고유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강학을 하는 명륜당이다. 이곳에서 성종 11년(1480년) 공부한 학생이 10명이 대과에 급제하는 경사가 있었다고 한다.



측면에서 본 명륜당이다.


서재의 후면이다.


명륜당 내부이다. 현재는 이곳에서 교육장소로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명륜당 내부이다. 국기와 하나의 현판이 걸려 있을 뿐 다른 현판 등 장식한 것은 없었다.


충효당이다. 이곳에서 교육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좌측은 충효실이고, 앞쪽은 보전각이다.


충효당의 내부이다. 유생들이 공부하는 강의실이다.


충효당 강의실 내부에 걸린 나주향교기이다.


나주향교의 건물은 오래되었고 컸다. 그러나 교육 장소인 충효당에는 의자가 없고, 수원향교에 비하여 규모가 작았다. 수원향교는 책상이 40개이고, 의자가 80개로 80명이 수강할 수 있다.


명륜당 측면이다. 고목이 보인다.


동재 뒷편이다. 굴뚝이 인상적이다.  


사무처가 옛 5칸 집이다. 사용하기 불편할 것 같다.


향교 협문과 충효당으로 가는 길이다.


나주향교에서 100여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영금문(暎錦門)이다. 나주향교를 포함한 일원이 성으로 둘러 있고, 그 출입구인 성문인 영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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