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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빗속을 걸으면서 하학상달(下學上達)을 생각해보다.

by 仲林堂 김용헌 2018. 8. 29.

올 여름 더위는 지독한 더위였다. 낮에는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는 보내기 어려워 에어컨이 있는 도서관으로 피서를 했었고, 며칠간은 너무 더위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날도 있었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더위가 물러 났다. 더위와 함께 가뭄도 심했다. 오랜 가뭄으로 대지가 목이 타고 있었다. 어제는 대지를 흠벅 적시는 단비가 내렸다.

 

어제(8월 28일)는 비가 오는 가운데도 광교산에 갔다. 반딧불화장실에서 출발하여 광교저수지 수변목책산책로를 따라 올라간 후에 저수지 서쪽편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는 짧은 산행이었지만 비는 그치지 않고 산행 중에 계속 내렸다.

 

빗속 산행을 하면서 지난 월요일 동아리에서 공부한 논어집주에 있는 하의상달지의(下意上達之義)를 생각해 본다. 공자께서는 제자 증삼(曾參)에게 "나의 도는 하나로 관통한다"고 했다. 공자께서 그 말씀을 하고 나가자 다른 제자들이 증삼에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증삼은 충서(忠恕)라고 했다. 이 말씀을 후대에 정자(程子)는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충(忠)은 천도(天道)이고 서(恕)는 인도(人道)라면서 충은 무망(無妄: 거짓이 없음)이고, 서는 충을 행하는 것이라 충은 몸(體)이고 서는 쓰임(用)이니 대본달도(大本達道: 대본은 본성이고 달도는 누구나 행하여야 할 도이다)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하늘의 명은 심원하며 그침이 없다(穆不已)고 했다. 충과 서는 서로 멀지 않으며 이것을 통하여 하학상달에 이르러야 한다고 했다.

 

비가 오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상이다. 이런 일상을 보고서 심오한 뜻을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용에서 이야기하는 하학상달(下學上達)의 의(義)이다. 

 

 

빗방울이 시멘트 바닦에 떨어지고 있다. 멀리 위에서 보면 그 속이 잘 보이지 않는다. 순한 모습니다.

 

 

비가 내리는 모습을 지면 가까이에서 보면 요동치는 모습이다. 지면에 부딛치며 반발력으로 위로 튀어 오른다. 하늘의 명(天命)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나 위로 오르니 아래로 떨어지려고 요란하다. 천명(天命)의 쓰임(用)은 인도(人道)라. 떨어지는 물을 "어떻게 치수(治水)하는 가?"가 인도(人道)라고 할 수 있다. 쓰임은 대본달도(大本達道) 하여야 한다고 했으니 과하지도 못 미침(不及)도 없이 알맞게(和)에 이르게 해야 한다고 했다. 대본은 치수로 볼 수 있지만 인문에서 보면 하늘이 준 성품(性品)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인의예지신이 화(和)에 이르는 게하는 것이 인도라할 수 있다.

 

 

물방울이 난간 막대 끝에 매달려 있다. 일행과 함께 걷는 중에 멈춰 촬영하다보니 아쉬운 사진이다. 시간을 갖고 촬영했다면 난간 막대 위에 광교산이 더 보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물은 어도를 넘처 흐르고 있다. 여럿이 모이면 힘이 나온다.

  

 

이날 비도 그침이 없고 우리의 발 걸음도 쉼없다(不已)

 

비록 비가 오는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서 심원의 이치에 깨달아야 하는 것이 바로 하학상달(下學上達)의 뜻(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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