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光山金氏 이야기

광산김씨 중흥지 연산 고정 마을

by 仲林堂 김용헌 2018. 4. 11.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황산벌참살이마을은 조선 초에 관찰사를 지낸 약채의 후손이 뿌리를 내린 마을로 600여 년의 전통을 지니고 내려 온 곳이다. 조선 예학의 종장인 사계의 고장이기도 한 이 마을은 옛날 백 제시대에 계백장군이 신라군을 맞아 싸우다 장렬히 죽은 황산벌에 속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수락산, 오줌바위, 말발굽바위 이야 기 등 계백장군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마을 입구에 있는 고정리 마을 약도이다.


사계묘역과 영모재는 좌측에 있고, 관찰사공 고택, 양천허씨정려각, 좌의정공사우, 영사재, 모선재, 황강김공신도비는 우측 산아래 거정터에 있다. 


산 아래가 고정리 거정터이다.


우측이 양천허씨정려각이고 앞에가 거정터 마을이다.


이 거정마을에서 오른편 서쪽 방향으로 그리 높지 않은 수락산(首落山)이 있다. 수락산은 계백의 목이 떨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마을 뒤편에 있 는 오줌바위라고 부르는 바위산은 계백장군이 전선을 시찰하면서 주변 의 자연환경을 살피기 위해 자주 올랐다고 하는데 계백장군의 말이 오줌 을 싸서 바위에 오줌모양이 남아있다고 해서 ‘오줌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계백장군이 타고 다녔던 말이 얼마나 훌륭하고 우람한지 그 말이 서 있던 곳에 말발굽 모양이 남게 되었다고 하여 ‘말발굽바위’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수락산 너머 계백장군을 주벽으로 모신 충곡서원이 있고, 계 백장군의 묘와 백제군사박물관이 있다.


이 마을은 옛날 연산현의 한 지역으로 마을에 큰절이 있었다 하여 붉적 골, 적사골, 거절터라 하던 것이 변하여 거정터, 거정리, 거정티, 거정대라 불러 오다가 남쪽 마을 쇠머리, 오리골, 서당골 등과 합하여 고정리가 되 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은진미륵이 쇠머리 마을에서 생산되는 돌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 마을은 조선 초에 충청도도관찰출척사를 지낸 약채가 이곳에 터를 잡은 이후로 수많은 관료, 학자들을 배출하였다. 사계 장생은 국광의 5대 손이며, 황강 계휘의 아들로서 고정리 일대를 세거지로 삼았던 마을이다.


이곳에는 마을 전체가 민속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문화재가 많이 있다. 거정터에는 ‘고정리 약도’에서와 같이 마을 입구에 정경부인 양천허씨 의 절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가 있다. 마을 왼쪽에 의정공 국광의 큰아들 대사간공 극뉵의 계배(繼配) 의령남씨 재실인 영사재(永思齋), 관 찰사공 재실 숭원재가 있고, 숭원재에서 서북 방향 300m 지점에 황강 계 휘의 묘가 있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좌의정공 국광의 종가가 있고, 종가 의 우측에 모선재(慕先齋)가 있다. 황강 계휘의 신도비는 양천허씨정려 에서 동북 방향 300m 지점에 있다.

이곳이 양천허씨의 정려다. 양천허씨는 개성에서 남편이 요절하자 유복자를 데리고 시가인 이곳에 유복자 김철산과 손자 김국광, 김겸광, 김정광, 김경광을 잘 훈육하여 큰 인물로 키웠으며, 장차 광산김씨의 중흥지가 이곳에서부터 나왔다.  


양천허씨가 개성에서 시집인 고정리까지 수백 리 길을 걸어서 왔으나 시아버지인 관찰사공 약채가 시가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임시로 초막 을 짓고 기거하자, 드디어 관찰사공께서 맞아들었다. 초막을 지었던 자리 에 이 유허비를 세웠다. 그 자리는 양천허씨정려가 있는 곳으로 동쪽 2시 방향, 양 800m 지점이다.


고정리 서당골에는 14세 양간공 김연(金璉)의 단소(壇所)와 재실인 숭모재(崇慕齋)가 있다. 숭모재 안에 15세 정경공 사원(金士元)과 참지정사 공 사형(金士亨)의 단소(壇所)도 있다. 관찰사공 약채(若采)의 단소와 재 실인 숭원재(崇遠齋)도 있다.


관찰사공 김약채의 사당 모경사이다.


관찰사공 김약채의 재실 숭원재이다.


고정리 거정터에서 남쪽으로 약 1,200m 지점에 사계 김장생의 묘소 일 원이 있다. 이곳에는 사계 묘 이외에 양천허씨의 묘, 감찰공 철산(鐵山, 1392~1450)의 묘, 목사공 공휘의 묘, 사과공 선생의 묘, 진사공 정수의 묘, 그리고 북쪽으로 공안공 겸광(謙光)의 묘와 신도비, 사계 장생의 사당(祠 堂)과 재실인 염수재(念修齋)가 있다. 염수재에서 동북방향으로 양천허 씨의 재실인 영모재(永慕齋)와 목사공 재실인 율수재 등이 있다.


사계 묘역이다.


사계 김장생의 묘이다.


공안공 김겸광의 신도비이다.


사계 김장생의 재실 염수재이다.


 사계의 사당이다.


충청도도관찰출척사공 약채는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했다. 1400 년(정종 2) 문하부좌산기(門下府左散騎)가 되었고, 그 뒤 대사헌을 지내 고, 1404년 충청도도관찰사가 되면서 이곳 연산 고정리로 입향을 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충청도도관찰사공의 아들 검열공 문(問, 1373~1393)은 약관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요절하였다. 검열공의 부인 허천양씨가 개 성에서 유복자였던 세 살짜리 어린 감찰공 철산을 데리고 시집인 연산 고 정리 시가(媤家)로 내려 올 때 호랑이가 길을 인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곳 마을 이름이 범넘이, 범내미이다.


감찰공 철산은 의정공 국광(1415~1480), 공안공 겸광(1419~1490), 첨정공정광(廷光), 판교공 경광(1428~1490)을 두었으며, 그 중 국광(의정공파 파 조), 겸광(공안공파 파조), 경광(판교공파 파조)은 문과에 급제, 특히 국광 은 좌의정에 올랐고, 겸광은 예조판서, 좌참찬에 올랐으며 청백리로 녹선 되었다. 양천허씨는 사계 김장생의 7대 조모며, 신독재 김집의 8대 조모 이다. 그 후손에는 대제학 7명, 상신 4명, 유현 2명, 종묘배향 3명, 구운몽 을 지은 김만중 등 수많은 훌륭한 인물이 나왔다.


의정공 김국광의 사당 감실이다.


황강 김계휘의 재실 모선재이다.


고정리의 문화 유적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9호인 고정리 양천허 씨 정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10호인 황강 계휘의 신도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8호인 사계 장생의 문묘배향교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47 호인 사계의 묘소 일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07호인 모선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67호인 양천허씨 재실인 영모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78호인 영사재 등이 있다.


양천허씨의 재실 영모재이다.


김극뉵의 처 의령남씨의 재실 영사재이다. 



황강 김계휘의 신도비이다.



고정마을 주변에도 여러 광산김씨 유적지가 있다. 고정마을에서 북쪽 으로 약 2km에 사계를 배향하기 위하여 세운 돈암서원이 있다. 이 서원 에는 사계 장생, 신독재 집,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이 배향되어 있다. 그리고 고정마을의 서쪽 산 너머 1km에 충곡서원이 있다. 의절 위인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충곡서원에는 18분의 유현이 배향되어 있다. 그 중 광산김씨는 충정공 익겸, 문효공 만중, 삼육제 정망 등 세 분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