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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수원의 도심을 되돌아 보며

by 仲林堂 김용헌 2018. 3. 4.

수원은 다른 도시에 비하여 비교적 사람들이 많다. 인구가 많아야 시장도 잘 되고, 식당도 병원도 잘 돌아가므로 사람살기 편리하다. 수원시 화서동은 전국적으로 볼 때 살기 편리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수원의 토백이는 아니지만 1976년부 겨울 화서동 오거리 근처에서 신혼 살림을 차렸다. 거기서 1년을 살고 병무청 근처에서 2년을 살았다. 그 후 송죽동에서 살가다 다시 1996년 한진현대아파트를 분양받아 지금까지 22년을 살고 있다. 


1976년 화서동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 해 대규모의 화서주공아파트가 준공했다. 1975년도에 영복학교 근처에 수원에서 화서주공 1단지가 건설되었다. 화서동 아파트는 수원시에서 처음 건설한 아파트였다. 화서동 이외 수원시 어느 곳에서 아파트가 없었으니 당시 수원에서 가장 잘 나가는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화서동은 인구유입이 많았다고 할 수 있지만 수원의 개발 중심은 동수원으로 옮겨갔다. 동수원의 개발에 비하면 화서동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수원의 도심은 남문이었다. 남문을 중심으로 남문시장, 시외버스터미널, 시청 등이 남문을 중심으로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수원은 점점 커져 외곽으로 확산했다. 시외버스터미널이 수원역 앞으로 옮겼고, 시청은 동수원으로 갔다.


남문은 1970년대 후반까지 전성기였다. 그 당시 경기도에서 가장 비싼 땅이 남문 보건약국이었다. 그 후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수원화성을 복원하면서 건축에 고도제한이 있어 발전에 한계가 있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이지만 상대적으로 새로운 개발 여지가 컸던 동수원에 밀렸다. 근래에는 수원역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이제는 남문 도심은 사람이 많지 않다. 도시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농촌진흥청이 직장이라서 직장 주변에서 멀리 가지 않았다. 만약 수원의 개발의 중심이었던 동수원쪽으로 이사했다면 지금보다 나의 재산이 많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진취적이지 못했다. 오늘 하루에 만족하는 삶이라서 발전이 없었던 게 아닌가 쉽다.


어제(3월 3일)는 화성을 한 바퀴 돌면서 남문을 지나면서 남문시장을 중심으로 있는 영동시장, 지동시장, 미나리광장시장, 못골종합시장, 팔달문시장 사진을 찍었었다. 이에 앞서 화서동을 지나면서 화서동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병무청사거리 사진을 찍었다.



병무청사거리에서 본 화서동의 중심 거리이다. 여기는 내가 수원향교 가는 길이도 한다.


수원역에서 서울 가는 길은 1번국도가 남문방향이고, 그 후 새로난 길이 이 길이다. 4차선 도로이다. 

 

남문에서 수원천 건너 지동시장이다.


남문에 있는 영동시장이다. 우측편에 팔달문이 보인다. 남문시장이라고 하면 될 것으로 왜 영동시장이라고 했는 지는 알 수 없다.


지동시장 아래가 미나라광시장이다.


미나리광시장 아래가 못골종합시장이다.


수원천 다리를 지나면 위쪽으로 못골시장 등 4개의 시장이 연속해서 있다.


예전에 가장 활발했던 남문 거리이다. 예전에 이곳은 발디딜틈이 없이 사람이 많았다.


남문 시장이다.


지붕이 있어 좋지만 경기는 예전에 비하면 형편없다.


엄청나게 사람으로 분볐던 이곳 시장은 한산하다.


다 백화점으로 몰리고 전통시장은 좋은 물건도 없고 사람도 없다.

팔달문시장 간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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