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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중국(장가계, 창사)

악양루(岳阳楼)에 올라

by 仲林堂 김용헌 2017. 4. 9.

봄비 내리는 오후 루양로우(岳阳楼)에 도착했다. 비오는 날씨라 그런가 관람객이 우리 이외 몇 사람이 없어 홀가분해 좋다. 이곳을 찾기 전에는 크 누각 한 채를 기대했는, 막상 와 보니 악양루 앞에 관광상가가 1km쯤이나 있고, 악양루을 빛나게 하는 들러리들이 이만 저만 있는게 아니였다.

 

중국국가여유국 서울지국(http://www.visitchina.or.kr/)은 아래와 같이  악양과 악양루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악양(웨양, 岳陽)
호남성 동북부의 상강(湘江)하류에 위치한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고성(古城)이다. 또한 이곳은 동정호(洞庭湖)와 장강(長江)이 교차하는 곳이며, 북송(北宋)때 쓰여진 “악양루기(岳陽樓記)”에 명예를 다투는 곳이라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악양의 옛 이름은 파릉(巴陵)으로 중국의 중요한 역사문화의 도시로서 비옥한 토지 덕택에 농업이 발달해 왔고, 여기에 동정호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이 더해져 어미지향(魚米之鄕)이라 불렸다. 두보를 비롯한 많은 시인과 이곳에서 시를 읊었으며, 맞은편에 있는 동정호 역시 그곳에 담긴 많은 민간고사를 가지고 있다. 악양은 작은 도시로 시가지에도 옛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것들이 서민적이고 고풍스런 느낌을 주어 편안하고 정감을 주는 곳이다. 

 

 

악양루(웨양러우, 岳陽樓)
호남성 예양시의 고적 예양고성 서문의 윗 쪽에 있다. 아래쪽으로는 동정호가 보이며, 앞으로는 군산을 북쪽으로는 장강에 접한다. 악양루는 강남사대명루의 하나로 손꼽힌다. 악양루는 삼국시대 오나라의 명장 노숙이 군사적 목적으로 만든 누각이다. 당(唐)나라 때 악주의 태수 장열(張說)이 이곳을 수리하여 다시 세우면서 악양루라고 이름을 고쳐짓고, 그때부터 문인재사들의 시를 읊는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예로부터 많은 문학작품 속에서 악양루와 동정호는 찬사를 받아왔다. 두보의 시 “악양루에 올라(登岳阳楼)”가 유명하다.

 

악양루 안으로 들어서면 큼직큼직하게 쓴 송나라의 시인 범중암의 “악양루기”가 있다. 동정호반에 거연히 솟아있는 악양루는 중국 고대건축중의 귀중한 자산으로서, 예로부터 “동정의 천하 제일수, 악양의 천하제일루”라 일러왔다. 악양루가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악양은 당나라때 건조되고 후에 병란에 타버린 것을 북송년간에 다시 재건했다고 한다. 악양루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면 끝없이 푸른 물위에 흰 돛배 떠돌고 물속에 흰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악양루의 건축은 독특하다. 주루는 3층이고, 높이는 15m이다. 4개의 큰 기둥이 건물 전체의 하중을 받쳐주고 다시 12개의 둥근 나무기둥이 2층을 받쳐주고 있다. 건축의 또 다른 특색은 지붕 형상이 장군의 투구와 같아 웅장한 것이다.』

 

 

 

정문인 남대문을 들어서자 오조루관(五朝樓觀: 당, 송, 원, 명, 청대의 누각)이다. 위에서 기술했듯이 악양루는 삼숙시대 오나라의 장수 노숙이 만든 누각이나 그 후 불타 없어지면 다시 짓기를 오조(五朝)에 걸쳐 했고 지금은 청나라 때 지은 것이다. 당나라 송나라 등 5조에 걸처 지은 악양루의 모형을 정원에 동판으로 만들어 전시한 것이 오조관루이다. 
오조관루를 지나자 수 많은 시인 묵객들이 지은 시를 돌에 새겨 회랑에 전시하고 있는 신비랑(新碑廊)이 눈길을 끌었다. 하나 같이 명필이나 대부분이 초서라 그 뜻을 알아 보기는 어려웠다. 그 외 쌍송사(双公祠) 등이 있었다.
드디어 투구모양의 악양루가 시야에 들어 왔다. 루각으로 규모가 컸고, 균형감 있게 늠늠했다. 중국에서 황제가 사는 황궁 이외는 황색기와를 사용 못한다고 하나 여기 앙양루는 황색기와 였다. 단체 관광객 1팀이 있었고 그 외 개인 관관객도 몇 명이 안되어 여유롭게 루각에 입장했다. 1과 2층에는 큰 현판이 하나 있었고, 그 외에 다른 현판은 하나 없었다. 3층에 오리나 두보의 "등악양루" 시를 모택동 글씨로 쓴 현판이 중앙에 걸려 있었다. 두보는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두보가 악양루에 올라듯이 우리일행도 악양루에 올랐다. 악양루에서 바라보는 동정호가 절경이라고 했으나 비가 오는 날씨로 시야는 멀기 가지 못했다. 그래도 옛 시인 묵객이 찾았던 그 자리에 나도 섰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우리 일행은 건배를 하면서 "이런 일, 흔치 않아" 했다. 비록 내가 시 한 수를 짓지는 못했지만 이 자리에서 두보를 시를  감상했으니 그 것으로 족한다. 이만 해도 흔치 않은 일이니까!      

登岳陽樓 등악양루 (악양루에 오르다 )

/ 杜甫 (두보) 712- 770

 

昔聞洞庭水 석문동정수

今上岳陽樓 금상악양루

吳楚東南坼 오초동남탁

乾坤日夜浮 건곤일야부

옛날에 동정호의 절경을 말로만 듣다가

오늘에야 악양루에 오르는구나.

오나라와 초나라가 동쪽과 남쪽으로 갈라졌고

하늘과 땅, 밤과 낮이 (동정호에) 떠 있구나.

 

 

親朋無一字 친붕무일자

老去有孤舟 노거유고주

戎馬關山北 융마관산북

憑軒涕泗流 빙헌체사류

친한 벗이 한 자 글월도 없으니

늙어가는 몸에 (의지할 곳이란)

외로운 배 한 척뿐이로다

(아직도)고향에선 전쟁이 계속되고 있으니

난간에 기대어서 눈물을 흘리노라.

 

두보 시인은 시를 좋아했다. 그 연유라 그런지 악양루 옆에 3번 술에 취한다는 삼취정(三醉亭)이 있었다.

 

 

 

악양루 입장 매표소 앞에 있는 5가지 모양을 한 상상의 동물이다. 중국에서는 이 동물은 수호신으로 큰 건물 앞에 흔하게 볼 수 있다.

 

 

악양루 남대문을 지나 바로 뒷편에 5조루관(五朝樓觀: 5개의 당, 송, 원, 명, 청朝에 걸친 악양루)이 보인다. 좌측은 동정호이다.

 

宋대 악양루

 

唐대 악양루

 

淸대 악양루

 

 

 

 

신비랑(新碑廊)에 걸린 석판 詩이다.

 

이 건물이 악양루(岳阳楼)이다.

 

 

3층 현판에 걸리 두보의 시이다. 모택동의 글씨이다.

 

 

두보의 시 물은 하늘 아래 일색이라는 수천일색(水天一色)이다.

 

풍월무변(風月無邊)이다. 풍월(風月) 받침을 떼어내면 충(虫)과 이(二)가 남는다고 하여, 둘이 아니다. 즉 최고라는 뜻이다. 풍월이 여기가 최고라는 뜻이다.

 

3층 누각 난간에서 본 동정호이다.

 

 

악양루 3층 난간이다.

 

악양루 3층 난간에서 본 날아갈듯한 정자다. 중국의 처마는 이렇게 하늘로 솟으나 우리의 정자는 약간 올라갈 뿐이다. 너무 솟으니 약간은 부자연스럽다.

 

악양루 옆에 있는 삼취정(三醉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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