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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山金氏 이야기

후조당 김부필 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 전시회와 학술대회 개최

by 仲林堂 김용헌 2016. 4. 27.


개회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국학진흥원 주관으로 후조당(後彫堂) 김부필(金富弼) 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  "광산김씨 예안파문중'의 특별전 개회식이 국국학진흥원 대강당에서 42511시부터 "한결같이 군자의 길을 걷다"라는 주제로 600여명의 유림과 광산김씨 종인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번 전시는 제13회 기탁 문중 특별전 중 하나로 열렸다. 그리고 13시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조선중기 사림의 등장과 선비상의 형성이란 주제의 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번 행사에 윤중 대종회 회장을 비롯한 27명이 참석했다. 그 날 아침 7시에 종로3가역 12번출구에서 만나 예안파종중에서 마련한 대절버스로 행사장인 한국국학진흥원에 행사시간에 딱 맞게 11시에 도착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대종회 용한 고문은 버스에서 군자마을과 후조당에 관한 미리 준비한 유인물을 배부했고 해설을 해줬다. 


이날 개회식에는 이용두 한국국학진흥원장의 개회사가 있었고, 김광필 국회의원, 정창진 안동부시장, 이계갑 안동시의회 의원, 고해령 뿌리회 회장이 축사를 했다. 이어서 후손을 대표하여 김석중 후조당 종손이 인사말을 했다.


 

한국국학연구원장, 후조당 후손 등이 광산김씨예안파문중 특별전시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다.


개회식 후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 전시운영팀장이 전시물 설명을 했고, 유교문화박물관 4층 기획전시실로 이동하여 테이프커팅 후 전시물 관람을 했다. 이번 전시에 눈길을 끄는 것은 후조당 문집 2권과 탁청정 김유(金緌)가 퇴계 이황에게 받은 시를 새긴 편액인 탁청정시판(濯淸亭詩板)이다. 또 하나는 120년 동안 후조당 후손 6명이 4대에 걸처 쓴 일기이다. 일기의 저자들은 자신을 반성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눈에 비친 그 시대의 모습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425일부터 825일까지 4개월간 전시된다 


탁청정 김유(金緌)가 퇴계 이황에게 받은 시를 새긴 편액인 탁청정시판(濯淸亭詩板)이다.


전시된 근시재 김해(金垓)의 향병일기이다.


그 날 오후 대강당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5개의 주제 발표가 있었다. 이들 주제 모두 광산김씨 예안파 문중에 관한 내용이었다.

 

1주제 발표는 "오천 7군자의 학문 활동과 사상"이란 주제로 한국학중앙연구원 권오영 교수가 발표했다. 권 교수는 "오천칠군자는 벼슬에 나아가서는 명절(名節)로 이름이 났고, 산림에 처해서는 예의를 숭상하고 행의(行誼)를 삼갔다. 이들은 송백의 후조(後彫)를 닮고 싶어 했고, 매화의 청향과 절조를 사랑했다. 이러한 오천칠군자의 정신은 지식보다는 실천을 중시하는 성행이 강하여 그 후학들이 왜란과 호란 때 의병의 주도자로 분연히 일어서서 구국과 안민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저력이 되었다"고 했다  

 

2주제 발표는 "후조당 김부필의 삶과 시세계"이란 주제로 한국국학진흥원 권진호박사가 발표했다. 권 박사는 후조당의 삶은 송백처럼 늘 변함없이 학문을 강론하고 지조를 지키는 삶이었다면서 도학과 절의를 실천한 영남을 대표하는 고사(高士)였다고 했다.

 

3주제발표는 "광산김씨의 임란 의병활동과 의의"란 주제로 순천대학교 이욱교수가 발표했다. 이 교수는 광산김씨 예안파 문중은 임란초기부터 자발적으로 의병을 결성하여 활약했다면서 후조당의 아들 김해는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안동열읍향병을 결성하고 관군과 협력하여 일본군의 핵심 주둔지인 당교를 집중 공격했고 철수하는 그들을 쫒아 밀양, 경주까지 진출했다고 했다.

 

4주제발표는 "예안 광산김씨의 종족활동과 일상생활"이란 주제로 고려대학 민족문화연구원 박종천 박사가 발표했다. 박 박사는 광산김씨 예안 문중은 "동규(洞規), 계회(契會), 성회(姓會)의 모임을 통해 술을 마시며 시를 짓고, 종경도 놀이를 통해 심신을 단련하고 친족 간에 유대관계를 증진했다"고 했다.

 

5주제발표는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이란 "우전(雨田) 김남수(金南洙)의 사회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을 중심으로' 부제로 한국국학진흥원 심상훈 박사가 발표했다. 심박 사는 김남수는 광산김씨 집성촌인 오천동 117번지에서 탁정정 종택의 종손 김영도의 차남으로 태어났다며 조선노농총동맹 결성을 했고, 풍산소작인의 활동을 지원했으며 안동지역 사회운동을 선도했다면서 그는 민족의 독립을 위한 현실적인 방법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했다고 말했다  

 

광산김씨 예안파는 청량산 아래 예안현이 있었고, 그 아래 7리쯤 오천이라는 곳에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 왔다. 한강 정구가 오천에는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하여 군자마을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에도 대를 이어 많은 군자를 배출하여 세간에서는 이들을 "오천25"이라고 부르며 이 가문이 쌓아온 업적과 적선의 미덕을 높이 평가했다. 예안 사림(士林)은 충효정신을 바탕으로 불의와 타협하기를 거부했고, 자연과 합일된 순수한 면모로 명리를 멀리하며 자기 수양에 골몰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대종회 임원 일행은 국학진흥원에서 행사를 마친 후 후조당 종가댁을 지키고 있는 ㅇㅇㅇ의 해설을 들으며 후조당, 탁정정, 설월당을 구경했으며, 종택 사랑채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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