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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향교

1박2일 유교문화관광 기행문 (5. 양천허씨 묘소)

by 仲林堂 김용헌 2016. 4. 18.



누가 이곳이 명당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 묘역 보는 순간 이상한 기운이 내려오는 느낌이 든다.  


사계 김장생의 묘소이다.


곡담으로 둘러 싼 묘소가 사계 김장생의 묘이고 그 아래가 양천허씨의 묘이다. 여러 사람들이 비문을 보고 있다. 이 비문은 신독재가 썼다.


버스는 돈암서원에서 나와 고정 마을 앞에서 양천허씨 정려에 관한 해설을 하려고 잠시 머물렀다. 양천허씨는 나의 직계 선조비(先祖妣)라서 내가 마이크를 잡고 양천허씨 이야기를 했다. 허씨는 17살에 검열공 김문(金問)에 시집을 갔으나 유복자를 두고 남편이 한림원에 들어 간지 얼마되지 않아 부군을 여이니 양천허씨는 겨우 17살이었다. 친정 아버지는 개가를 하려고 하자 허씨는 유복자를 데리고 시집인 이곳 연산으로 왔다. 그 유복자가 김철산으로 커서 사헌부 감찰이 되었다. 철산은 네 아들을 두었고 그 중 3 아들이 문과에 급제하였고, 큰 아들 국광은 좌의정에 올랐고, 둘째 아들 겸광은 좌참찬에 올랐다. 양천 허씨의 7대손자가 사계 김장생이다. 버스로 양천허씨 정려에 가서 직접 보았으면 좋겠지만 차가 너무 커서 좁은 길을 돌려 나오기 어려워 먼 발치에서만 보았다.


버스는 곧 사계묘역에 도착했다. 사계 묘역에는 여러 묘소가 있지만 그 중 곡담 아래에 있는 사계 묘가 있고, 그 아래에 양천허씨의 묘가 있다. 유목자인 감찰공의 묘는 좌측편 아래에서 두번째이다.


양천허씨의 자손 중 문과에 급제한 사람은 이곳에 찾아 와 고유할 때 흙 한짐을 부려 놓고 사초하는 전통이 있었고, 급제자수 270명이 넘어 혼유석을 넘어오지 않게 하려고 묘의 전면이 변형이 되었다 한다. 손자 묘가 할머니 묘 위에 있으니 역장(逆葬)이라고 말을 하나 예학의 종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사계와 신독재가 그것을 모를리는 없는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묘를 쓸 때 손위를 가릴 것이 없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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