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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향교

1박2일 유교문화관광 기행문 (2. 동춘당 송준길 고택 방문)

by 仲林堂 김용헌 2016. 4. 17.


동춘당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동춘당 앞에서 송백헌 충남대 명예교수로부터 해설을 듣고 있다.


우암 송시열이 쓴 동춘당(同春堂)이란 현판이다.



좌측은 겨울에 사용하는 방이고, 우측은 여름에 사용하는 대청이다. 방의 창호는 작고, 대청의 창호는 크다.  



동쪽에 있는 창호는 남쪽에 있는 창보다 작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북쪽 방은 창호가 없고. 북쪽 대청도 창문이 작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 나오자 바로 차는 동춘당 공원입구에 선다. 송백헌 충남대명예교수께서 우리를 맞아준다. 송교수님은 우암 송시열의 후손으로 광산김씨허주공세적록을 쓰신 분으로 나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이번 관광에 당초 동춘 고택과 우암 고택만 해설을 부탁드리려 했으나 자청하셔 돈암서원과 사계묘역도 해설해주신다고 했다.


사진으로서만 보았던 동춘고택을 직접 보니 동춘의 정갈한 글씨만큼이나 집도 멋이 들어 있었다. 큰 대청이 동쪽에 있고 서쪽에 작은 방이 하나 있는 건물이다. 대청은 여름에 사용하기 때문에 지금의 창문과 같은 창호가 3면으로 있었으며 그 크기는 볕이 잘 드는 남쪽이 가장 크고 동쪽은 반쯤이고 찬 바람이 부는 북쪽은 작았다. 동춘당(同春堂)이란 현판은 화양동주(華陽洞主)서(書)라고 쓰여 있다. 동춘당(同春堂)은 송준길의 호이며 건물의 이름이다. 동춘이란 봄같고 싶다는 동춘당의 뜻이 깃들어 있다. 화양동주는 우암 송시열을 가리킨다. 우암이 쓴 현판이다. 숭정(중국 명나라의 연호) 무오년이면 1678년이다. 동춘과 우암은 13촌 숙질간으로 동춘이 항렬이 하나 높고 나이도 한 살이 많지만 어릴 적부터 친구같이 평생을 살았던 동지이다. 우암은 살기 어려워 동춘 집에서 같이 컸다고 한다. 동춘당에서 하나 새롭게 본 것은 동춘당의 증손자 송요화의 부인인 호연재김씨가 한국 3대여류시인이라고 것이다. 호연재의 한시 197편이 전해지고 있다고 했다. 

동춘당의 증손자 송요화의 처 호연김씨의 안내판과 한시이다.


송준길의 둘째 손자 후손 송용억 고택이다. 문이 잠겨 들어 갈 수 없고 담 넘어로 본 모습이다.

송용억 가옥 담장 앞 연산홍이 막 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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