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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山金氏 이야기

제 355기 익릉 제향 봉행

by 仲林堂 김용헌 2015. 11. 3.

인경왕후는 조선 19대 임금인 숙종의 원비이다. 비는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딸로 1661년에 출생하여 만 10세인 1671년 숙종세자빈이 되었고, 숙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13세인 1674년 왕비가 되었다. 20세 때 천연두를 앓다가 8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두 딸이 있었으나 모두 오래 살지 못했다.

 

비의 릉은 익릉(익릉)이다. 익릉은 단릉(單陵)으로 부군인 숙종이 묻힌 명릉과 산 하나를 넘어 따로 있지만 좌청룡과 우백호가 뚜렷한 풍수를 지닌 명당으로 보인다. 인경왕후는 부모의 가르침을 잘 받고 훌륭하게 왕비로서 역할을 했었으나 하늘은 무심하게도 꽃을 다 피우지도 못했지만 일찍이 불러 떠나가셨다. 광산김씨의 유일한 왕비로 광산김씨 일가로서 애석한 마음 금치 못하나 다행히도 비의 부친인 서석 김만기와 숙부인 서포 김만중는 형제 대제학이 되었고, 서석의 아들 죽천 김진규와 손자인 건암 김양택은 3대 대제학으로 이름을 세상에 알렸으니 비의 음덕은 헤아릴 수 없다.

 

비의 기신제가 어제 (111) ()전주이씨대동종약원(회장 이태호) 주관으로 고양시 익릉에서 200여명의 참사관이 참가한 가운데 봉행되었다. 서오릉 입구 재실에 향안청(香案廳)에 축과 향을 모셔 놓았고, 전사청 창문에는 제례에 제관과 집사의 분정기가 붙어 있었다. 인경왕후의 직계인 후손을 비롯한 많은 일가들이 모였다. 제관과 집사는 제복으로 갈아입고 축사(祝史)는 축과 향이 있는 함을 들고 맨 앞에 서고 삼헌관과 집사가 따르고, 일반 참사관이 뒤를 어어 정자각으로 향해 갔다.

 

홍살문 앞에서 축사는 축함을 내려 황색탁자 위에 내려 놓고 초헌관은 그 축함을 축관(大祝)에 주는 전향제(傳香際)를 했다. 축관은 신도(神道: 신이 가는 길)로 가고, 제관과 일반참사관은 어도(御道: 임금이 가는 길)옆에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축관은 정자각 동쪽 계단을 지나 제상 앞에 축함을 놓았다.

 

삼헌관과 집사는 정자각 동쪽에 서립하고, 참사관은 정자각 앞에 서립했다. 먼저 집사는 국궁4배하고 관세위에 손 씻고 정자각 내 제 위치에 자리했다. 제관은 국궁사배하고, 참사관도 국궁사배를 했다. 전사관과 능사는 정자각 서쪽 막사에 모신 전증(큰 놋쇠그릇)과 두개의 탕(작은 놋쇠 그릇)을 상에 올려 가지고 오면 이를 대축과 재랑은 받아 제상에 올린다.

 

초헌관은 관세위에서 손 씻고 동계단(두개의 계단 중 북쪽 계단)으로 올라 전상(술독이 있는 상) 앞에 서고 외제랑은 내축사가 들고 있는 작(술잔)에 멱으로 술을 떠 따른다. 제관은 이를 확인한다. 초헌관은 제상 앞에 북향립한다. 초헌관은 향을 3번 향로에 넣는다. 이어서 초헌관은 헌작한다. 그리고 축관은 축문을 독축한다. 초헌관은 부복흥 하고 일어선다. 그리고 정자각 서쪽 계단으로 내려 간 후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아헌관도 초헌관과 같이 관수하고 정자각 전상 앞에서 술을 술독에서 잔에 따르는 것을 확인하고 제상 앞 북향립한다. 이어 부복하고 헌작한다. 헌작 후 부족흥하고 정자각 서쪽 계단으로 내려 원래 위치로 돌아간다. 김재원 종헌관도 아헌관과 같이 작을 올리고 돌아간다.

 

헌작이 끝나면 이어서 축문을 태우는 망료례이다. 축관은 축판을 들고 정자각 서쪽에 있는 망료상에 놓으면 초헌관은 이를 확인한다. 찬례와 대축은 축을 들고 예감으로 가서 축문을 태운다. 이것으로 모든 제례는 끝났다.

 

제관과 집사는 기념촬영을 하고, 이어 제관과 모든 광산김씨 참사관이 모여 기념 촬영을 했다.

 

재실 창문에 걸린 335주기(週忌) 익릉제향 제관(祭官) 분방기(分榜記) 

 

재실 안에 있는 향안청(香案廳)이다. 황색함에 축과 향이 있다.

 

홍살문이 바로 뒷편에 황색탁자가 있다. 이 탁자 위에 향함을 놓는다. 홍살문 뒤에는 정자각이 있고, 정자각 뒤에 릉이 있다. 홍살문은 이곳부터는 신성하다는 하나의 표시이다.  

 

대축이 초헌관으로부터 받은 항함을 모시고 신도(神道)로 가고 있다. 신도는 넓으며 신도보다 한 단계 낮게 난 길이 어도(御道)이다. 어도는 왕이 가는 길이다. 제관도 왕이 아니기 때문에 어도로 걸을 수 없다. 제관과 모든 참사관은 어도 옆 잔디가 있는 길로 간다.

  

 

제상에 제물 차림이다. 제상 앞 탁자에는 향로가 있고 그 좌측(가려서 보이지 않음)에 축판을 놓고 향합이 있고, 전촉기라는 성냥을 놓은 그릇이 하나 있다. 제물은 과일이 없고 여러 종류의 다식, 산자, 약과, 떡, 탕이 올라 간다.

 

정자각 서쪽편에 있는 천막에 안치했던 뜨거운 음식인 전증과 탕을 가지고 올라오고 있다. 

 

전사관과 능사로부터 받은 전증(국수)과 탕을 집사가 받고 있다.

 

초헌관(좌)은 집준자가 멱으로 술을 떠 술잔에 따르는 것을 감시하고 있다.

 

초헌관이 향합에서 향을 집어 향로에 넣고 있다. 3번 넣는다고 하여 삼상향이라고 한다.

향을 피운 후 작(다리가 있는 술잔)을 올린다. 초헌관은 재랑으로부터 작을 받아 들어 올려 헌작하고 축관에 주면 축관은 작을 제상에 올린다.

 

축관은 작을 올린 후 전증과 탕 그릇 뚜껑을 열어 놓고, 시저그릇에 있는 젖가락을 가지런히 그릇 위에 올려 놓는다.

 

대축이 독축을 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부복흥(손을 팔자로 하고 허리를 굽힘)하고 독축을 듣는다.

 

제상의 맨 앞 줄에 작(술잔)을 놓는다. 그 뒤에 전증과 탕을 놓는다. 초헌례 중이라서 지금 작은 하나만 올려졌다. 

아헌관이다.

 

종헌관이 헌작하고 있다.

 

신어상(神御床: 임금의 신이 계신 상)이다.

 

제관이 손을 씻는 관세기이다.

 

축관이 축문을 태우고 있다.

 

 제례를 마친 후 이태호 익릉봉향회장이 제관을 소개하고 있다.

 

 집사들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제관과 집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례에 참석한 광산김씨 일가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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