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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족 이야기

어머니 돌아가시다.

by 仲林堂 김용헌 2015. 7. 23.

어머니께서 7월20일(음력 6월5일) 14시14분 건양대학교 병원에서 93세를 일기로 영면하셨다. 나의 어머니는 배운 것은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잘 해주고 싶어하시며 착하게 한평생 살으셨다. 어머니께서는 1923년 충남 벌곡면 한삼천리에서 장기정씨(長鄭氏) 집안에서 태어나 광산김씨 집안으로 출가하여 5남 2녀를 두었고, 본인의 삶은 없고 모두 남편과 자식을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불같은 성미로 전쟁 할 때 힘들어 하는 아버지의 형제와 우리 자식들을 감싸고 다독거리며 평화로 이끌으셨다. 어머니가 없으시었다면 우리 집안은 벌써 파탄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할머니로부터 희생하면서 사는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이 난다. 우리 할머니도 어머니와 같이 측은지심으로 살으셨다. 어머니는 주연은 하나 못하고 조연만하다 보니 역활이 미미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실제 우리 집안 건설에 아버지 못지 않은 내조의 역활은 아주 켰다. 

 

좀 아쉬운 것은 아버지께서 2004년 1월1일 돌아가신 후 산다는 것이 의미 없이 보였다. 주연이 없으니 늘 조연만 하던 어머니는 더 이상 역활이 없다 보니, 의미 없는 삶이었다. 아버지가 가시고 나서 치매가 왔다. 용돈을 받으시면 필요없다면서도 잘 챙겨 숨겨 놓았지만 기억은 살아지고 형수님이 훔쳐갔다고 했다. 이게 치매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2009년 9월 5일 어머니는 나와 집사람을 보고 아들 딸 잘크냐고 했다. 손자가 장성하여 결혼까지 했는데 어머니의 시계는 멈춰있었다. 병은 점점 심해져 더 이상 집에서 가족의 도움만으로 지내기 어려워 불효지만 2012년 2월1일 선우요양원 보낼 수 밖에 없었다 . 금년 2월 20일에는 전혀 아들도 알아 보지 못했다. 요양병원에서 눈도 뜨지 못한 채 말 한마디 못한채 4개월을 보냈다. 지난 19일 위독하다는 연락이 와서 병원으로 갔고, 20일 생을 마치었다. 

 

나는 어머니를 모시지도 못하였고, 정도 주지 못하였다. 잘 한 것이 없이 내 갈 길만 갔을 뿐이다. 우리 형제 중에서 가장 잘 모신 사람은 셋째 며느리고, 다음으로 막내 여동생이라 생각이 든다.  

 

조위와 문상은 돌아가시 분을 위하지만 실은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나를 보고 오신 문상객과 조위금을 보면 퇴직한지 6년이 지났으니 나의 평생 직장이었던 농진청 사람들은 별로 없다. 대신 종사를 하다보니, 종중 사람들이 주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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