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군에 간 조카 면회 차 연천 전곡리에 갔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암치료로 부모가 면회 갈 수 없게 돼 외산촌인 나와 나의 동생 부부가 같이 갔었다. 군부대에서 외출허가를 받은 조카와 함께 부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전곡리 선사유적지에 갔다. 그곳은 한탄강이 굽이 돌아가는 강 안쪽에 있었다.
오늘 살아가는 우리지만 시간을 과거로 돌려 지금까지 밝혀진 이 땅에 가장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보는 것도 흥미를 끄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유적지에는 여러가지 석기시대 인간, 코키리 등 동물 등 조형물이 많았고, 쉬식을 위한 벤취, 정자가 여러 곳에 있었고, 잔디밭에 정원수도 제법 커서 쉬식처로서도 훌륭했다. 그러나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이곳에서 유적이 발굴은 1978년 3월 Greg Bowen이란 주한 미군병사가 애인과 같이 한탄강 유원지를 거닐다 우연히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한 돌을 발견하였다. 그는 미국 인디아나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여 이 돌이 선사유적으로 생각하고 프랑스의 저명한 구석기 전문가인 보르드교수에게 발견 경위를 편지로 보냈고, 보르드교수는 본인이 방문하고 싶으나 어려우니 서울대 김원용교수에게 찾아가보라고 답장을 했고, 마침내 서울대 김원용교수는 발굴을 하여 세상에 전곡리 선사유적지가 밝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발굴은 30년에 걸처 17차 발굴을 하여 8,500여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최초로 구석기인이 살기 시작한 시점은 30만년전으로 알려졌다. 30만년전 전곡리 석기인이 5만에서 15만년전에 왔던 빙하기에 얼마나 살아 남았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이 땅은 30만년전에도 사람이 살만 했던 곳이 아닐가 쉽다.
동아시에서는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아슐리안주먹도끼는 지금으로 말하면 최첨단 장비로 아프리카와 인도 북부를 경계로 유럽에만 있고, 동아시에는 찍기석기만 있다며 인종적으로 유럽인이 동양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전곡선사유적지에서 주먹도끼가 발견되므로 더 이상 유럽 사람의 인종적 우월성을 주장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석기 유물이 나온 곳은 놀랍게도 현재의 표토로부터 6m땅속이었다. 땅 맨위)가 해발 59m이고, 유물이 발견된 곳은 해발 53m이다. 지하 6m이하는 현무암으로 바위층이고, 그 위는 4-5개의 단층으로 구성되었다. 붉은색 점토층은 중국이나 시베리아에서 날아 온 퇴적물이라는 설과 강의 범람에 의해 쌓인 퇴적물이라는 설이 있다. 맨 위 첫번째 층은 약 25,000년전 일본에서 날아 온 화산재, 그 아래 층은 95,000년전 일본에서 날아 온 화산재라고 한다.
지난 5월2일 입대한 조카 인준와 외삼촌 내외가 전곡리 선사유적지에서 걷고 있다.
주먹도끼인 아슐리안 석기이다. 손으로 잡기 편하여 여러 용도로 사용하고, 사용하기 쉬운 장비이다.
주먹도끼가 발견되는 곳은 좌측 두 사람이 있는 바닦면이다. 이 지층 형성은 30만년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닦은 현무암이고 그 위 흙은 4-5개의 단층이며, 좌측 여자의 머리 위부터는 단면 구조가 얼음에 얼었다 풀리면서 생기는 형태로 아래로 선이 나 있다고 한다. 가운데 여자가 앉아 있는 층은 단면에 줄이 없이 매끈한 단층으로 이 층에서 석기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산성토로 뼈는 다 없어졌고 돌만 유물로 남았다고 한다.
석장리 발견 이전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된 곳은 아프리카와 유럽뿐이었다.
석장리에서 발견된 찍개돌이다.
30만년전에는 이곳 기온이 아프리카와 같이 열대지방으로 코키리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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