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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정조대왕의 초상을 봉안한 화령전의 운한각

by 仲林堂 김용헌 2015. 5. 24.

정조대왕은 화성을 건설하였으며 어느 임금보다 애민 사상이 높았다. 정조대왕이 1800년 서거한 후 순조께서 선왕의 애민 사상을 그리기 위하여 수원화성 행궁 옆에 정조대왕의 초상을 모시기 위하여  화령전을 1801년부터 3년간만에 지었고, 화령전의 주 건물인 운한각(雲漢閣)에 초상을 모셔 놓았다.

  운한(雲漢)은 "은하수"를 가리킨다. 시경의 아래 싯귀에서 "雲漢"을 따왔다. 이 시는 아래에서와 같이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하늘에 비를 내겨주십시오 비는 싯귀이다. 정조대왕의 백성 사랑하는 마음이 만천하에 내려 주신다는 뜻을 담고 있다.

 

倬彼雲漢(탁피운한)  밝은 저 은하수여
昭回于天(소회우천)  하늘에 밝게 둘러 있구나
王曰於乎(왕왈어호)  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아
何辜今之人(하고금지인)  지금 사람들이 무슨 죄인가
天降喪亂(천강상난)  하늘이 난리를 내리시어
饑饉薦瑧(기근천진)  흉년만 거듭해서 든다
靡神不擧(미신부거)  모든 신에게 제사드려
靡愛斯牲(미애사생)  제물을 아끼지 아니하고
圭璧旣卒(규벽기졸)  옥 구슬까지 다 바쳤어도
寧莫我聽(녕막아청)  내 말은 들어주지 아니하신다

이하 생략...

서남쪽에서 본 운한각이다. 건물 뒤는 벽돌로 쌓았다. 이 벽돌로 쌓은 게 하나의 그림이 된다고 한다.

운한각이라고 쓴 현판 둘레에는 기둥, 석가래, 문 등 모두 나무 조각품이다.

 

정조대왕의 초상화이다. 임금이 입는 어의(御衣)이 아니라 장군복이다. 평생 부국강병에 힘쓴 그는 장군으로 서 근위병인 용양위를 서장대에서 지휘도 하였다.  

건물이 올해로 214년이 되었지만 나무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뒷 벽에 있는 벽돌담이다. 하나의 예술작품이 된다. 나라의 살림도 하나 하나 쌓아 올리므로 부국이되고 군사도 장병 하나 하나가 충실하여야 큰 튼튼한 성을 쌓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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