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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족 이야기

나의 아버지 회갑날

by 仲林堂 김용헌 2015. 1. 9.

책을 정리하던 중에 1974년에 쓴 일기장을 발견했다. 그 일기장에서 나의 아버지의 회갑날 9월9일(음력 7월23일)이 눈이 띄었다. 나의 가족사 중 중요한 하루로 기념할 수 있는 날이었다. 아래는 그 때 쓴 나의 일기이다.

 

오늘은 아버님 회갑날! 평생에 한번 있는 경사스런 날이다. 아버지께서 늘 소를 잡는 다고 장담을 하셨지만 소는 잡지 못하고 큰 돼지 2마리를 잡았다. 헛간에는 떡이 무지 무지 하게 널어 놓았고, 부침개 부치는 사람들, 그릇 딱는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어제 찾아온 경진, 정희, 용환, 덕수 등 대학동창 친구들은 시끌벅적 하구나 느꼈을 것이다. 예절과 의식을 많이 따지는 아버지였으나 아들이 아버지를 위하여 잔치를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지 생각보다 간소하게 회갑예식을 마치었다. 

 

부적국민학교에서 천막 2개와 지밭에서도 천막 1개를 빌려 와 마당에 설치했다. 음식은 다락에 올려 놓고, 그릇은 샘 가에 놓고 연신 상을 차려내왔다. 셀 수 없는 사람들이 밀려 왔으며 11시경까지 100명이상의 사람이 온 것 같았다. 학교 선생, 면 직원, 지서 경찰, 원종장 직원 등 부적면의 유지들은 다 왔다. 영운이 아버지가 기생 2명을 데리고 왔고, 대전에서 셋집 주인이 2명의 기생을 데리고 와 여흥은 고조되었다. 기생들의 노래가락에 사람들은 갈 줄 몰랐다. 하루 종일 먹고 놀았다. 해가 지면서부터 젊은이들이 찾아 왔다. 나의 국민학교 동창도 15명 가랑 와서 술을 싫컷 먹었고, 시비가 붙어 화해 시키느랴 애를 먹었다. 밤 12시가 되도록 시끄러웠다. 부조금도 많이 들어 왔다. 다음 날 오전 축의금 기록하는데 2시간 이상이 걸렸다. 그러나 돈 액수는 많지 않은 10만원 정도였다.

 

보충설명: 나의 아버지는 논 한마지기 유산도 받지 못했으나 절약하여 논을 사고 또 사고하여 논 80마지기를 지었던 자수성가를 하였다. 회갑잔치는 자식이 차리는 것이나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그 당시 못 먹던 시절에는 배고픈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 잔치였다. 가족만 먹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나누는게 잔치였다. 또 크게 잔치를 벌리는 것이 자랑이었다. 그 때는 회갑까지 산다는 것도 큰 자랑이라서 회갑까지 살음은 큰 축복이었다. 그 당시 일반미 쌀 1가마가 15,000원이었으니 10만원이면 쌀로 환산하면 6.6가마가 되고 지금 돈으로는 약 100만원이 된다. 나는 그 때 군 복무 중이었으나 휴가를 내 아버지 회갑잔치에 왔다.  

 

아버지와 같이 찍은 사진은 이 사진이 유일하다. 나의 큰 아들이 서울대 공대 기계우주항공과에 합격하여 합격자 명단이 걸린 운동장에서 1997년 1월 20일 기념 촬영을 했다. 아버지는 그 후 2002년 1월1일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1945년부터 이 집에서 2002년 돌아 가실 때까지 살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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