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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山金氏 이야기

영중추부사 송시열이 지어 받친 인경왕후(仁敬王后)의 지문(誌文)

by 仲林堂 김용헌 2014. 10. 27.

영중추부사 송시열(宋時烈)이 제술(製述)하여 받친 인경왕후의 지문(誌文)

 

숙종왕비 인경왕후 제334주기 제향 봉행이 1025일 서오릉 내 익릉에서 있었다. 그 때 사단법인 전주리씨대동종약원 (全州李氏大同宗約院) 전례위원 이규상선생의 해설 중에서 우암 송시열이 지은 인경왕후 지문의 창홀은 참배객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원문]

嗚呼! 我聖妃氏族德行嘉美之會, 其盛若此, 宜其永綏福祿, 使我臣民, 同被慈濡, 而上天不仁, 遽閼遐齡, 令我三聖, 悲悼於上, 臣民號慕於下, 豈所謂神者誠難明, 而理者不可推者耶? 雖然, 仁者善之長; 敬者德之基; 翼者思慮深遠今所上謚與陵號, 克著其實, 而在天於昭, 令聞不已, 孔聖所謂, 大德必得其名者非耶? 抑臣於此, 竊有所深感而重悲者, 記昔嘗侍聖祖于別殿, 指示我先大王所居之東閤, 而深歎聖嗣之遲期, 及其天佑宗祊, 我殿下誕生, 則聖祖已不及見矣逮我聖妃恭承宗事, 則常謂則百有慶, 以慰我聖祖在天之靈矣乃今坤儀遽缺, 甲觀不闢, 以聖妃之德之行, 終不克蒙聖祖之遺澤, 嗚呼, 痛哉!

 

[해석]

"아 우리 성비(聖妃)의 씨족(氏族)의 덕생(德行)과 아름다운 일들이 이와 같이 성대(盛大)하였으니, 마땅히 길이 복록(福祿)을 누리시면서 우리 신민(臣民)으로 하여금 인자하신 은택(恩澤)을 함께 입게 할 것인데, 하늘이 불인(不仁)하셔서 갑자기 하령(遐齡)을 막으시어 우리 삼성(三聖)으로 하여금 위에서 비도(悲悼)하게 하시고, 아래로 신민(臣民)으로 하여금 울부짖게 하시니, 어찌 이른 바 신()이란 진실로 밝히기 어렵고, 이치란 추고(推考)할 수 없다는 것인가? 비록 그렇다고 하나, ()이란 선행(善行)의 으뜸이고, ()이란 덕행(德行)의 기틀이고, ()이란 사려(思慮)가 깊고 원대한 것으로서, 지금 올린 시호(諡號)는 능호(陵號)와 더불어 실상(實狀)을 잘 나타내었으므로, 하늘 위에서 빛날 것이며, 영문(令聞)이 그쳐지지 않을 것이니, 공성(孔聖)께서 말한바 대덕(大德)은 반듯이 그 이름에서 얻는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이에 신은 가만히 깊은 느껴 거듭 슬퍼하는 바가 있는데, 기억하건대, 옛날에 일찍이 성조(聖祖)를 모시던 별전(別殿)에서 우리 선대왕(先大王)께서 거처(居處)하시던 동함(東閤)을 가리키면서 성사(聖嗣)의 시기가 늦어짐을 깊이 한탄하였는데, 하늘의 종팽(宗彷)을 도우심에 미쳐서 우리 전하께서 탄생(誕生)하셨지만 성조(聖祖)께서는 이미 미처 보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성비(聖妃)께서 공손히 종사(宗事)를 받는데 미치면, 항상 말씀하시기를, "많은 경사스러운 일이 있으면 하늘에 계신 우리 성조(聖祖)의 영혼을 위로해 드려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제 곤의(坤儀)가 비게 되어 갑관(甲觀)을 열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성비(聖妃)의 덕행으로써도 끝내 성조(聖祖)의 유택을 입지 못하게 되었으니, ! 슬프도다"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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