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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해석

방외댁유허 연산한양촌(訪外宅遺墟連山漢陽村)

by 仲林堂 김용헌 2014. 10. 21.

 

訪外宅遺墟 連陽村

외갓집 옛터인 연산 한양촌을 방문하다.

 

大明山下漢陽村 대명산 아래 한양촌에

外宅遺墟幸尙存 외갓집 옛터가 다행히 아직 남아있네.

世事翻騰誠有數 세상 사 엎치락뒤치락 진실로 운수가 있는데

家聲寂寞永無孫 가문의 명성 적막하여 영영 후손이 없구나.

 

凄凉古木如相守 처량한 고목은 서로를 지키는 듯한데

溪只自흐느끼는 찬 시내는 단지 스스로 울음을 그치지 않네

丙子後來追感淚 병자년 이후로 와서 추억하며 눈물을 흘리고

年一度訪虛園 해마다 한 번씩 빈 동산을 방문하누나.

 

성삼문선생은 맏딸을 황주목사(黃州牧使)를 한 박림경(朴臨卿)에게 시집보냈다. 맡딸은 아들 박증(朴增:1461-1517)을 두었다. 박증은 학문이 깊었지만 외조부댁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것으로 보고 절의를 숭상하며 벼슬길로 나가지 않고 충청도 노성 암천에 은거하였다. 박증은 외조부 댁이 있는 한양촌을 보면서 시를 지었다. 이 시는 암천 박증 선생 실기 권지1에 있다.

 

이 시는 한양촌에 관한 여러가지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성선생이 죽은 해가 1456년 병자년이다. 丙子後來는 성선생이 돌아가신 후 매년 왔다는 뜻이다. 이 시에서 한양촌 외갓집이라고하여 이 시를 통하여 매죽당이 한양말에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목이 서로 지킨다고 하였다. 이것은 지금도 한양말에 고목으로 살아 있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를 가리키고 있다. 지금까지 은행나무만 성선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은행나무와 함께 느티나무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는 그냥 우연히 심은 것이 아니라 은행나무는 유교를 상징하고 느티나무는 학문을 상징하는 나무며 마을을 보호하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이 시를 분석하면 칠언율시로 넓히고 좁히며, 나무와 시냇물을 보면서 외갓집 방문한 감회를 시로 표현했다. 

1-2구는 외갓집이 있는 대명산 아래 한양촌임을 알린다. 대명산으로 넓혔다가 한양촌으로 좁히며 도입하고 있다.  

3-4구는 3구는 세상의 일에 대하여 넓히며, 4구는 가문에 대하여 좁혀 이야기하고 있다.

5-6구는 슬품을  5구는 나무에서 찾고, 6구는 시냇물에서 찾는다.

7-8구는 7구에서 병자년 이후로 하여 몇년으로 넓히며, 8구에서 매년으로 좁히며, 눈물을 흘리며 해마다 방문한다며 끝을 맺는다.   

 

 암천선생 실기에 있는 訪外宅遺墟 원문

한양말 은행나무와 느티나무이다. 은행나무가 앞에 있고 느티나무가 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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