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은 처음 경복궁 동쪽 뒷편에 있는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에 있었다. 두번째로 광화문 뒷편에서 경복궁을 가로 막고 있었던 일재의 잔재로 헐어버린 중앙청 건물에 있었다. 그리고 수백년 남을 수 있는 훌륭한 지금의 건물로 이사 왔다.
이 박물관에서 처음 만나는게 선사시대의 빗살무늬 토기이다. 왜 토기에 빗살을 그었을 가 늘 궁금했다. 머리 빗는 "빗" 모양이라고 하여 빗살무늬 토기라고 한다.
그러나 전 홍익대교...수인 안상수 디자이너는 머리 빗는 빗 문양을 토기에 새겨 넣을 까닭이 없다고 했다. 풍요를 비는 태양 숭배사상으로 햇살이라 했다. 빗살무늬토기가 아니고 빛살무니토기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한다. 빛살은 우리 민족의 아이콘이라는 것이다.
지난 주 이 박물관 3층 발코니에서 현관 라운지를 바라 보니 빛살이 현관 안으로 들어 와 있었다. 조상이 왜 토기에 빛살을 새겼을 가에 대한 답은 신기하게도 바로 박물관 현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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