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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해석

고려조 문안공 김양감에 관한 병풍기록 해석

by 仲林堂 김용헌 2013. 11. 21.

지난 11월 6일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모경사(慕景祠)에서 관찰사공 (휘 약채) 세일사에 참석하였다. 그 때 제상 뒤 놓은 병풍에 문안공 김양감에 관한 글을 보았습니다. 한문을 배우는 한 사람으로 그 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 보았습니다.

高麗中期文宗朝
光山金公七世孫
謚文安諱金良鑑
出仕後至宣宗官門下侍中...

文宗朝官太僕卿
時正使入南宋
(多量經書購入東坡集傳歸鄕後孔子祠堂設置春秋祭享現文朝釋奠嚆矢)
其時蘇東坡一見許以知己
出錢凝祥地桃核杯兼贈詩曰

高麗中期文宗朝 고려 중기 문종 조
- 文宗朝: 문종 때

光山金公七世孫 광산김씨 7세손(참고로 현재 나는 39세로 나의 32대조가 된다.)
- 公: 씨

諡文安諱金良鑑 시호가 문안공인 김양감
- 諡는 諡號이며, 시호는 예전에 임금이나 정승, 유현(儒賢)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주던 이름
- 文安: 시호임
- 諱: 돌아가신 분의 이름

出仕後至宣宗官門下侍中 출사하여 후에 선종관, 문하시중에 올랐고
- 出仕: 벼슬에 나아감
- 至: 까지 (올랐고)
- 宣宗官: 벼슬이름
- 門下侍中: 벼슬이름으로 종1품

文宗朝官太僕卿 문종 때 관직은 태업경이었고
- 太僕卿: 벼슬이름

時正使入南宋 그 때 정사(사절)로 남송에 들어갔고
- 正使: 부사가 아닌 사절의 대표임
- 入南宋: 남송(중국의 송나라)에 들어갔다.

(多量經書購入東坡集傳歸鄕後孔子祠堂設置春秋祭享現文朝釋奠嚆矢)
다량의 동파집 등 다량의 경서를 구입하여 돌아와 전하였고, 그 후 공자사당에 춘추관을 설치하였고 제향은 현 문조 석전의 효시가 되었다.
- 祭享: 제사 지내는 일
- 文朝: 임금이나 신하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지금의 종묘이다.
- 釋奠: 공자, 공자의 제자, 현인, 선생 등을 제사 지내는 곳 지금의 성균관이다.
嚆矢: 시작이 되다.

其時蘇東坡一見許以知己 그 때 소동파가 한번 보고 친구가 되었고
- 蘇東坡: 소동파는 이태백, 두보와 함께 중국의 3대 시인으로 송나라 때 당시 수도인 항조우의 시장이었던 정치인
- 許以知己: 친구로 허용하다.

出錢凝祥地桃核杯兼贈詩曰 돈을 내서 복핵배를 사 길지에 시와 함께 다음의 시를 써 올렸다.
- 凝祥地: 길지로 문조나 석전과 같이 아주 상(祥)스런 곳
- 桃核杯: 복숭아씨로 만든 술잔

 

소동파가 고려 사신 김양감을 한번 보고 친구가 되어 주기로했다니 좀 과장일지 모르지만 극진한 예우라고 본다. 소동파는 1037년생으로 그가 고려 사신 김양감을 만난 ㄴ것은 문종 갑인년으로 1074년이며 소동파 나이 37세 때이다. 김ㅁ양감은 출생년은 모르나 과거에 합격한지 23년 되는 해로 40-50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동파는 중국 역사상 두보, 이태백과 함께 중국3대시인으로 알려졌으며 송나라 때 항조우 시장까지 역임한 인물이다. 소동파가 논고려봉장이란 상소문에서 고려사신 접대에 비용이 셀 수 없고 그들이 가는 곳마다 떠들석했고 관폐와 민페가 커 괴로움이 컸다고 했고, 송나라의 기밀이 고려로 통하여 적국인 거란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하는 등으로 볼 때 고려에 대하여 좋지 보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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