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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전주성의 남문을 왜 풍남문이라고 했을 가?

by 仲林堂 김용헌 2013. 10. 5.

지난 추석 때 전주 한옥마을을 방문하면서 역사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전주성의 남문 풍남문(豊南問)을 방문했다. 전주 남문은 본래 고려 때 세웠다고 하나 정유왜란 때 불 살라 없어 진 것을 영조 44년 1768년에 전주감사 홍락인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이 문을 풍남문이라고 한 것은 한 고조의 고향이 풍패로 풍패의 남쪽이라 풍남문이라고 했다고 안내판에 써있었다. 중국의 최고의 인물은 한고조 유방이라면 조선에 그와 버금갈만한 사람은 태조 이성계라고 보았고, 한고조의 고향 패(沛)현을 따서 전주를 폐라고 했고 폐의 남쪽이니 풍남(豊南)이 되었다.

 

중국 진시황제는 천하를 통일하였지만 난폭한 정치로 백성으로부터 원망을 크게 사 후대 높이 평가를 하지 않는다. 진시황제가 죽고 나 뒤 천하대란이 일어나며 난세에 한왕 유방은 초패왕 항우를 무너뜨리고 천하를 손에 넣게 된다. 한고조 이후 15대 400여년간을 지속했다. 로마가 유럽의 본고장이라고 하면 동양의 본 고장은 한나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중국의 글을 한자 (漢字)라고 하는 것도 중국사람을 한족(漢族)이라고 하는 것도 한나라로부터 유래한다. 중국을 세운 사람을 진시황제로 보지 않고 한 고조 유방을 본 것이다. 

 

전주성의 남문 이름을 전남문(全南問)이라고 부르기보다는 풍남문(豊南問)이라고 부르면서 전주를 풍패와 비교하면서 전주를 치겨 세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성문 안쪽에서 바라 본 전주성 남문 풍남문이다. 호남제1문이라고 현판을 달았다.

 

 성문 위에 2층누각은 규모가 감영에 있는 성문으로 꽤 크고 잘 졌다. 성문 좌우로 누각이 하나씩 있는 것이 특색이 있고 우측 누각은 종루이다.    

 성밖에서 바라 본 풍남문이다. 문밖으로 옹성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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