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0일 경기 화성시 향남면 상두리에서 애국지사 김용창선생 추도회에 참석하였다. 김용창 선생은 이곳에서 1926년 태어나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덕수공립상업학교 야간반에 진학하였고,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려 경성제국대학 법학부 와 경성보험관리소 사환으로 일했다. 조선총독부의 조선인 차별 정책을 비난하고, 조선독립을 주장하고. "반도 이천만동포여, 자 일어서라!" 등 벽보를 붙이는 독립운동하다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1년6개월 징역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45년4월3일 순국하였다.
일제는 선생께서 돌아가시자, 고향에 계시는 부모에게 독립운동 사실을 은폐하고 죄 짓고 감옥에서 죽었다고 시신을 찾아가라고 했다고 한다.
부모는 자식이 죄 짓고 죽었다고 어디에 하소연도 못하고 살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선생이 독립운동하다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김영삼정부 때 독립유공자 찾기를 통하여 경성지방법원 판결문이 알려지면서 처음 알려졌다.
김용창선생의 독립운동 활동은 50년동안 묻혀 있다 뒤늦게나마 밝혀져 다행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밝혀지게 된 것은 친일세력이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선생의 애국활동은 유관순 누나의 활동과 다를 바 없이 훌륭하다고 봅니다. 그의 독립운동이 있어 오늘날의 우리가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김용창선생의 친 동생이 내가 회장으로 있는 광산김씨판교공파종중의 부회장으로 있어 추도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일제는 선생께서 돌아가시자, 고향에 계시는 부모에게 독립운동 사실을 은폐하고 죄 짓고 감옥에서 죽었다고 시신을 찾아가라고 했다고 한다.
부모는 자식이 죄 짓고 죽었다고 어디에 하소연도 못하고 살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선생이 독립운동하다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김영삼정부 때 독립유공자 찾기를 통하여 경성지방법원 판결문이 알려지면서 처음 알려졌다.
김용창선생의 독립운동 활동은 50년동안 묻혀 있다 뒤늦게나마 밝혀져 다행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밝혀지게 된 것은 친일세력이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선생의 애국활동은 유관순 누나의 활동과 다를 바 없이 훌륭하다고 봅니다. 그의 독립운동이 있어 오늘날의 우리가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김용창선생의 친 동생이 내가 회장으로 있는 광산김씨판교공파종중의 부회장으로 있어 추도회에 참석하였습니다.
2013년 6월2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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