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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조선의 최고 사학 파평윤씨 가문의 종학당

by 仲林堂 김용헌 2013. 7. 30.

친목 모임의 일행과 함께 점심식사를 한 후 관촉사 은진미륵을 방문하고 나서 충남 논산시 노성면 소재 명재 윤증 고댁 방문했다. 해박한 지식과 함께 친절하신 김영수 문화해설사님의 안내로 윤증가문의 영재사관학교라고 할 수 있는 종학당을 방문했다.

 

  논산에는 연산에 사계김장생의 광산김씨 가문, 은진에는 우암 송시열의 은진송씨, 그리고 노성에는 명재 윤증의 파평윤씨 명문가가 자리 잡고 있다. 사계선생은 송구필의 문인이며, 송시열은 사계선생의 문인으로 은진송씨와는 배움을 받고 주고 한 사이로 스승과 제자이이라 광산김씨는 은진송씨와는 서인과 노론으로 같은 길을 걸어 왔으며 오늘날까지도 가깝게 지내고 있다. 한편 명재 윤증은 송시열의 문인이지만 스승과의 제자사이지만 갈라서게 되어 서인에서 소론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되어 광김과도 소원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명재 윤증의 후손은 수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이번 방문에서 우리나라에 한 가문의 학교가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으며, 한 가문에서 42명의 대과(문과) 과거합격자를 배출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시대 과거는 3년에 한 번씩 치러지며, 전국에서 33명만을 선발하는 시험에 합격하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라 할 정도로 어려웠다. 이렇게 어려운 시험에 한 가문에서 불과 몇 세대에 42명을 배출하였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파평윤씨 가문이 조선 최고의 과거 급제자를 낳을 수 있던 비결은 바로 종학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종학당에서는 학칙이 있어 목표(요즘으로 비전)가 있고, 어떻게 배우나의 실천강령이 있었으며, 배운 것을 반성하고 잘 못된 점은 다시 보완하는 휘드백 시스템이 있었다고 한다. 공부란 꿈을 키우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중앙에 성균관이 있고, 지방에서는 서원이 있으며, 윤씨 가문에 가문의 사학인 종학이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교육을 잘 받고 잘 살게 된 것도 훌륭한 교육기관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들의 아버지는 "나는 지게를 졌지만 자식에게도 지게를 지게 할 수는 없다"면 먹고 입지 못하면서도 자식 교육에 열과 성을 다 했다. 우리가 오늘날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잘 살게 된 것도 아마 교육의 힘이 가장 컷으리라 생각이 든다. 비록 스파르타식 교육이 강압적이며, 피동적이라고 할 지라도 효과가 크다. 얼마전 끝난 동계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가 세계 5위의 동계올림픽 강국에 들어 국위를 선양한 것도 태능선수촌에서 죽기살기로 엄청난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거라고 본다.

 

 종학당에 들어가는 입구다. 이곳은 러시아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쵸프가 다녀 갔다는 비석이 위 사진의 좌측 중간에 있었다.

 

 종학당이란 가문(宗)의 배우()는 곳()이다. 위 비문에서 나왔듯이 종학당의 명재 윤증의 아버지 윤선거가  1627년 그의 문중 자녀를 모아 교육하였고, 그 다음 해 종학당을 세웠다. 그의 아들 윤증은 1701년 초학획일지도와 위학지방도란 책자에 자세한 교육이념과 학칙을 만들었다. 1915년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999-2003년에 복원하였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정수루이고, 정수루 뒤편에 있는 건물이 백록당이다.

 

 

 윤선거는 1628년  백록당(白鹿堂)을 짓고 "우리 집안은 흰 사슴이다"라는 오가백록이라 휘호하였다.  흰 사슴은 영재를 뜻한다. 수많은 급제자를 배출했으니 영재라고 칭함이 마땅하나 가문의 자긍심을 불러 주려한 것이다. 칭찬이야 말로 가르침에서 아주 좋은 약이다. 오늘날의 교육에서도 학생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이곳이 정수루(淨水樓)이다. 정수란 깨끗한 물이다. 마음을 깨끗하는 집이다. 공부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자이다. 

 

 정수루에 올라 바라 본 정경이다. 앞에는 초급자가 공부하는 건물이고 그 앞에 저수지가 보인다. 날씨가 흐려 잘 보이지 않으나 저수지 뒤에 보이는 산이 윤씨 조상이 묻혀 있는 산소가 있다. 선조를 생각하면 오직 공부만 하라는 환경을 조성했다.  

 

 다시 기회가 되면 사진도 다시 촬영할 겸 종학당을 방문하고 싶다. 우리 일행은 종학당 방문을 맡치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2010. 3. 7. 김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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