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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山金氏 이야기

사계 김장생선생 제사 참석기 (2)

by 仲林堂 김용헌 2013. 7. 30.

합리주의와 함깨 들어온 기독교가 이 땅에 널리 퍼지면서 우리의 전통인 유교는 일부 기독교인으로부터 미신으로 취급받으면서 다소 외면받아 왔다. 우리 조상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사상에는 신은 있다고 믿고 있다. 하늘에는 혼이 있으며 땅에는 백이 있다고 믿었다. 하늘에 계신 조상의 혼을 부르고 땅에 계신 백을 불러 좋은 음식을 받치는 의식이 바로 제사다. 신이 있다면 제삿날 찾아 올 수 있으며, 자손들과 만남의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기독교 역시 신은 있으며 사후에 천당이나 지옥에 가서 다른 후세를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사후 세계를 체험하지 못하였음에도, 믿는 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편을 폄하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제사는 우리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예절로 조상 신과 가족이 만나는 의식으로 소중하게 지켜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새벽 3시가 되자 제관들은 사계할아버지 신을 모시러 사당으로 나섰다.

 염수재 건물 바로 뒷편에 있는 신주가 모셔진 사당이다. 담 사이에 난 문을 들어서면 사당이 있다.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축관, 집례, 집사 등 제관이 사당 안으로 들어 서고 있다.

 사계할아버지의 신주는 이 건물의 맨 끝에 있었다. 신주는 상 아래에 검은 천으로 덮어 있다. 제관은 절을 하고, 제관은 꿇어 앉아 제사지내기 위하여 신주를 모셔간다고 모신다고(출취정침 공신추모) 신고를 하고 있다.

 맨 앞에 초헌관이 신주를 들고 계단을 내려 서고 있다.

 

병풍 앞에 신주의자에 신주(지방)이 보인다. 신주는 아래와 같이 쓰여 있다.

고위(할아버지 신위): 현14대조고가희대부형조참판증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 겸 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가사세자사익문원공부군신주 14대손선원봉 사

비위(할머니 신위): 현14대조비증영정경부인창령조씨신위

사계선생은 본처가 돌아가신 후 순천김씨가 후처로 들어와 다섯아들을 두었으나, 신위에는 본처만 있고 후처는 없었다. 조선시대의 나쁜 습관으로 서얼 차별이다. 지금도 서얼 차별의 전통이 이어저나오고 있다. 한편 생각해보면 사계선생의 불천위 기제사 의식은 올해가 379회로 옛 전통을 변함없이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오늘의 제례도 379년전과 하나도 다른게 없다고 하니 후처의 신주도 모셔야 후처의 소생 자손도 온전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이나 그렇게 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신주는 제상에 올려 놓고 빗장을 열고 제사가 시작되었다. 제사의 순서는 참신-강신-진찬-초헌-독축-아헌-종헌-유식-합문-계문-진다-사신-납주 순으로 진행되었다.

 초헌관 종손이 술잔을 올리고 있다.

 아헌관이 잔을 올리고 있다.

 종헌관이 잔을 올리고 있다.

 합문을 하고 있다. 함문이라함은 신이 안심하고 식사할 수 있게 문(병풍으로 둘러침)을 닫고 기다리는 절차이다.

 사신(작물인사) 참가자가 두번 절을 한다. 모든 제례를 끝나고 신주를 검은 천으로 덮고 신주를 사당으로 모시려고 한다.

 모든 제관은 사당으로 신주를 모시고 들어 간다.

 제례가 모두 끝나고 음식을 방에서 꺼내고 있다. 그 후 회의를 1시간 가량 한 후 아침(?) 식사를 하였다. 서울행 버스에는 5시15분 출발하였다.

 

사계선생의 불천위 기제사는 조상을 위하는 시간이었지만 또한 가족간 친목을 돈독히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한 숨도 못 자고 날 밤을 새우며 보낸 사계선생의 불천위 제사는 나에게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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