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光山金氏 이야기

양천허씨의 세일사 봉행

by 仲林堂 김용헌 2013. 7. 29.

아래 글은 타 문중은 관심 없겠지만, 우리의 제례전통문화로 이해하고 읽어주실 것으로 이해 바랍니다.

 

병인년(2010년) 양천허씨할머니 세일사가 11월10일(음력 10월5일)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할머니묘소에서 봉행되었다. 허씨할머니는 겨우 17세 남편인 검열공께서 병환으로 돌아가시어, 시집인 연산으로 유복자인 감찰공을 업고 시집으로 와서 일생을 맡치신 분으로 우리 후손은 할머지가 개가 했다면 우리는 없었을 것이라며, 어느 누구도 흠모하지 않는 분이 없다. 8대손 신독재께서 할머니를 아래와 같이 비문에 글을 새겼다.

 

아! 넘어진 나무에도 오히려 싹이 돋거늘, 하물며 우리 선조비(허씨할머니)의 쌓은 덕과 닦은 행적이 보통 백 천배나 뛰어나니, 의당 장수를 얻을지라. 대가 거의 끊어지려다가 다시 변청하니, 그 보복과 효험이 북채와 북이 서로 응하는 것과 같고, 복은 착한 데로부터 온다는 이 치가 과연 거짓이 아니로다. 이는 우리 김씨 흥쇠의 증험이요. 천도의 후한 똣도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7시반 수원에서 집을 나섰지만 출근시간이라서 차가 많이 밀렸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에 들어 선 후 과속을 하여 시제 시작시간인 10시에 겨우 맞춰 도착했다. 우리 판교공파에서는 용성씨, 종수씨, 용남씨, 처음 뵌 한 분으로 나를 포함하여 5분이 참석했다. 

일찍 오신 분들은 서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세일사는 조상에 대한 제사이지만, 참배객에는 일가를 만나는 좋은 기회가 된다.

광성군세일사에서는 참석자 직접 도기(도착했다는 노트)에 기재하지만, 이곳에서는 서기가 참석자 이름을 얘기 하면 적는다.

금년 시제 참석자는 작년보다 어림 잡아 100명은 되어 보인다.

정성을 다하여 고임을 한 제사음식이다. 전문가 2분이 꼬박 이틀을 걸려 괨을 했다고 한다. 은행 줄이 대각선으로도 맞는다.   

밤도 쌓는 것도 위단은 아랫단의 사이 사이에 들어 가도록 했다. 밤도 대각선으로 줄이 보인다.

 

초헌관이 올리는 산적, 아헌관이 올리는 어적, 종헌관이 올리는 계적이다. 제사에 쓰이는 음식은 최 상품이며, 신선도가 있어야 한다. 집사는 방향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들어 제상에 올려야 한다.

대추도 각이 져 있으며, 줄이 맞는다. 맨 앞줄은 과일이고, 그 다음에는 채(나물)이 들어가고 그 뒤에 적이 들어간다. 앞 사진에는 육적, 어적, 계적은 초헌, 아헌, 종헌 순서대로 하나씩 좌측 위에 보이는 작은 상위에  집사가 올린다.

진설(제물을 배치하는 것)이 끝난 후 강신을 한다. 강신은 향을 피워 하늘에 계신 할머니 혼을 부르는 의식이다. 술을 세번 나눠 따르면 땅에 계신 백을 부르게 된다. 그리고 나서 참신이다. 참신이란 신에게 모든 참배자가 인사를 올리는 의식으로 2번 절을 한다.

그리고 독축이다. 축관은 초헌자 옆에 꿇어 앉아 축문을 읽는다.

초헌이다. 초헌관은 종손으로 완수씨이다. 초헌관은 술잔을 직접 가져다가 집사가 따라주면 직접 올린다. 집사는 식기 뚜껑을 열고 수저를 밥 중앙에 꼿는다. 집사가 올린 술잔을 가져 오면 술의 반을 3번 나눠 땅에 따른다.    

집례는 홀기를 읽는 사람으로 제례의 주관하는 분으로 금년에도 용원씨가 맡았다.

아헌관 선보씨이다. 아헌관은 공안공파 몫으로 금년에는 선보씨가 맡았다.

종헌이다. 종헌관은 판교공의 몫이며, 금년에는 종수씨가 맡았다. 종수씨는 제례에 전문식견이 많은 분으로 돈암서원 추행제에도 매년 제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종헌이 끝나고 나면 진다이다. 진다는 초헌관이 제관으로 행한다. 진다는 차를 올린다는 의미로 갱을 올리는 것이다. 식사를 다 하셨으니 물을 마시라고 올리는 의식이다. 진다를 하고 나면 두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이고 묵념을 한다.

철찬이다. 철찬은 수저를 뽑고, 메(밥) 뚜겅을 덮고 축문을 불사르고 음복을 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