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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가거대교 해저터널

by 仲林堂 김용헌 2013. 7. 29.

전통한옥에서 숙박 제의가 있어 새로운 체험이 될 것 같아 안동 임청각에서 하룻밤을 일본사람들과 숙박하기로 예약을 했다. 성주에서 참외 하우스를 방문하고 나니, 해는 저물어 가고 있었다. 성주에서 안동까지는 빨리 달려야 1시간 반은 걸린다. 왜관IC로 진입하려다가 핸들을 다부동 고개를 넘어,  중앙고속도로 부IC로 진입하여 남안동까지 정신 없이 달렸다. 남안동IC에서 나와 네비게이숀에 따라 임청각에 도착하니 밤 8시이다. 네비게이션 덕에 잘 찾아 왔다. 큰 저택은 빈집 같이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안채로 들어서자 아주머니 한 분이 나와 우리 일행을 맞이해 줬다.  방 하나에 5만원부터 15만원까지 방 크기에 따라 숙박비는 달랐다. 방 크기도 다르고 돈도 같지 않아 망설이고 있을 즈음 이곳을 예약했던 정교수가 나왔다. 정교수의 교통정리로 40만원에 방 4개를 쓰리고 했다.

 

임청각이란 이름도 생소하고, 이곳이 어떤 분이 사는 곳일 가 궁금했던 차 대분 입구에 걸린 플랭카드를 보니 독립운동가 이상룡 선생의 고택이었다. 이름도 생소한 임청각이다. 임청각은 아마도 푸른강이 옆에 있는 누각이란 뜻으로 풀이 해본다. 낙동각이 바로 앞에 내다 보이는 명당자리에 잡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임청각은 1518년 세웠다고 하니 500년에서 7년이 빠지는 오래된 건축물로 국가지정 보물이다.

 

카리스마가 묻어나는 이상룡 선생의 모습이다. 최고의 가문, 풍채 또한 대단하신 분이다. 개인적으로는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지만, 개인보다는 나라를 위하여 자신과 아들 그리고 손자까지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치신 분이다. 이런 훌륭한 분이 있었기에 독립이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곳은 여자들이 사는 안채이다.

 우측편에 작은 방이 있는 사랑채 같으나 별채가 있으니, 이곳은 여자들이 거주하는 안채로 이용했을 것 같다. 우물은 지금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채와 연결된 건물로 나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잤다. 온돌이라서 따뜻했다. 새벽에 불을 다시 넣었나 너무 뜨거워 잠에서 일찍 깼다. 세면 시설이 좋지 않고, 이부자리가 옛날 쓰던 이불로 우리나라 사람은 괜찮으나 너무 깨끗한 일본사람들은 맘에 들지 않았을 것 같다.   

 별채인 임청각이다.

 임청각 바로 앞에 방음벽이 처져 있어 임청각의 이름이 무색하게 되었다.  방음벽 넘어로 겨우 낙동강이 보이나 팬스가 이 집을 다 망가뜨렸다. 일제가 독립운동가 집의 맥을 끊으려고 했나 철도가 마당 앞으로 지나고 있다. 과거의 아픈 역사가 남아 있지만 이곳을 다시 찾은 사람은 일본인이다. 세상이 변해 지금 일본과는 상하 관계가 아니라 이제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이 가는 동반자 관계로 변했다.

 앞에 보이는 건물은 사당으로 추정된다.

 임청각 안으로 들어 가지 대청마루에는 훈장과 액자가 걸려 있었다. 이상룡선생의 아들, 손자, 조카까지 9명이 독립운동을 하였다고 한다.

 이상룡 선생의 국무령 취임 기념사진이라고 한다. 풍채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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