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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파평윤씨 가문의 사관학교 종학당

by 仲林堂 김용헌 2010. 4. 30.

친목 모임의 일행과 함께 점심식사를 한 후 관촉사 은진미륵을 방문하고 나서 충남 논산시 노성면 소재 명재 윤증 고댁 방문했다. 해박한 지식과 함께 친절하신 김영수 문화해설사님의 안내로 윤증가문의 영재사관학교라고 할 수 있는 종학당을 방문했다. 논산에는 연산에 사계김장생의 우리 광산김씨 가문, 은진에는 우암 송시열의 은진송씨, 그리고 노성에는 명재 윤증의 파평윤씨 명문가가 자리 잡고 있다. 

  이번 방문에서 우리나라에 한 가문의 학교가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으며, 한 가문에서 42명의 대과(문과) 과거합격자를 배출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시대 과거는 3년에 한 번씩 치러지며, 전국에서 33명만을 선발하는 하늘에서 별 따기 처럼 합격이 어려운 시험이다. 이렇게 어려운 시험에 한 가문에서 불과 몇 세대에 42명을 배출하였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우리들의 아버지는 "나는 지게를 졌지만 자식에게도 지게를 지게 할 수는 없다"면 먹고 입지 못하면서도 자식 교육에 열과 성을 다 했다. 우리가 오늘날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잘 살게 된 것도 아마 교육의 힘이 가장 컷으리라 생각이 든다. 비록 스파르타식 교육이 강압적이며, 피동적이라고 할 지라도 효과가 크다. 얼마전 끝난 동계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가 세계 5위의 동계올림픽 강국에 들어 국위를 선양한 것도 태능선수촌에서 죽기살기로 엄청난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거라고 본다.


종학당에서는 학측이 있어 목표(요즘으로 비전)이 있고, 어떻게 배우나 실천강령이 있었으며, 배운 것을 반성하고 잘 못된 점은 다시 보완하는 휘드백 시스템이 있었다고 한다. 공부란 꿈을 키우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교육을 잘 받고 잘 살게 된 것도 훌륭한 교육기관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중앙에는 성균관이 있었고, 지방에서는 서원이 있었으며, 나아가 가문에는 종학이 있었던 것이다. 

 

앞에 보이는 건물은 정수루(淨水樓)이다. 정수란 깨끗한 물이다. 마음을 깨끗하는 집이다. 공부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자이다. 정수루에서는 그들의 조상이 묻혀 있는 묘소가 멀리 보였다. 선조를 생각하면 오직 공부만 하라는 환경을 조성했다.

 

정수로 뒷편에 있는 건물은 백녹당(白鹿堂)이다. 백녹은 흰 사슴이다. 흰사슴이 있는 곳이라. 흰사슴은 영재를 뜻한다. 영재가 공부하는 서당이다. 수많은 급제자를 배출했으니 영재라고 칭함이 마땅하다고 보이나 윤씨 가문은 스스로 자긍심을 불러 줬던 것이다. 칭찬이야 말로 가르침에서 아주 좋은 약이니라.

 다시 기회가 되면 사진도 다시 촬영할 겸 종학당을 방문하고 싶다. 우리 일행은 종학당 방문을 맡치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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