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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중국(백두산, 연길)

연길 방문

by 仲林堂 김용헌 2010. 1. 10.

이번 중국 여행은 여행사가 기획한 관광으로 9월6일부터 11일까지 4박5일의 백두산을 포함한 연변과 북경 코스였다. 일반 관광이야기는 다음에 미루기로 하고, 이번 기행문은 중국 장사치들에 관한 이야기를 2회에 걸쳐 싣는다.

 

 

  연변이란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연길(延吉)이란 이름 생소했다. 지도를 펴놓고 보니 함경도 북쪽에 있었다. 인구가 겨우 40만밖에 안 되는 소도시에 비행기가 뜬 다니 얼마나 많은 한국관광객이 찾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뿌리라고 하는 백두산과 과거 우리 조상의 땅을 밟아보고, 그 땅을 지키고 있는 조선족의 삶, 그리고 개혁 개방의 길로 들어선 중국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연길 공항을 내렸다. 금번 행정자치부 주관 우수공무원연구모임 해외연수는 각 부처에서 1명씩 20명, 행자부에서 단장과 총무 한 명씩 총 22명이 참가했다. 
  연길에서 점심식사에 중국사람을 처음으로 만났다. 중국식당에서 손님 대접 잘 받으려면 많이 남겨야 한다. 이는 중국은 아직도 세계기준에는 못 미치는 구나 하면서도 중국은 먹거리만은 풍부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연길에서 잘 닦여진 고속도로를 달려 40분만에 북한과 접경하고 있는 도시 도문을 찾았다. 누렇게 물든 가을 풍경이 한적하고 풍요롭기 그지없다. 도문에서 북한과 연결하는 다리가 있다. 중국 쪽의 두만강 아래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이 있었으며, 연인들의 데이트를 목격할 수 있었지만 강 건너편으로는 목탄을 때는 듯한 시커먼 연기를 일으키며 가는 기차와 한 두 명의 애들 모습만 보일 뿐 사람들은 온데 간데 없었다. 우리 일행이 탄 버스 주변에는 장사꾼을 판을 치고 있었다. 화장실이 어디라고 가르쳐 주면 나올 때 물건 사지 않으면 안 된다며 떼를 쓴다. 버스에 오르자 꽃제비로 보이는 10살 남짓한 애가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손을 내밀지 않으면서도 그의 눈망울은 원한에 차 있었다. 더 이상 이런 아이가 없기를 바라며 도문을 떠났다.

  저녁 식사는 북한사람들이 직접 경영한다는 두만강식당에서 했다. 아무런 부담 없이 이런 식당에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들은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음을 느꼈다. 그러나 북쪽 사람들은 주문한 식사를 제 시간에 맞춰 차려만 놓았을 뿐 더 이상의 서비스는 없었다. 우리 일행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밥과 반찬을 모두 차례 놓았다. 밥은 이미 식어 굳어 있었다. 먼 발치에서  우릴 보기만 하는 종업원들을 보면서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지만 개방의 길은 멀었음을 다시금 느꼈다.


  연길에서 백두산까지는 버스로 4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중간에 간이 휴게소가 있어 화장실 용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명월저수지를 돌면서 외딴 집에 차가 섰다. 화장실이란 것이 바닥에 통나무 짤라 몇 개 느려 뜨려놓고 포장을 둘러 쳤을 뿐이다. 버스가 서자 그 집에서는 장뇌삼, 상황버섯을 팔고 있었다. 장뇌삼은 산삼보다는 못하지만 국내에서 값비싼 삼으로 알려졌다. 장뇌삼은 보신을 중시하는 한국사람들을 끌기에 적합한 좋은 상품이었다. 백두산 천지를 보고 나서 장백폭포를 본 후 내려오자 노천온천 물에 계란을 삼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한국말을 몇 마디 배운 장사꾼들이 우리를 붙잡았다. 하나라도 팔려고 줄기차게 따라 붙었다. 이곳에서 물건값은 종잡을 수가 없다. 같은 물건이 10만원에 팔기도 하고 만원으로 값이 떨어지기도 하고, 버스가 떠날 때쯤 해서는 몇 천 원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본드로 붙어 놓은 장뇌삼까지 있었으니 그들은 우리를 속일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하고 있었다. 한번보고 말 사람 어떻게 하면 우리를 속일 수 있을 가에 혈안이었다. 제 값에 물건을 살 수 있는 방법은 구입시기를 최후까지 미뤄야 한다. 차가 떠 날 때 사면 비교적 제 값에 물건을 살 수 있다.

 

2001.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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