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화서2동은 8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 농촌마을이었다. 그 후 이곳도 화서역 주변을 중심으로 도시 개발되면서 옛 시골 모습은 거의 없다. 옆에 숙지잔은 공원으로 남아 있고, 이 소공원에서 동쪽으로 100 여 미터에 숙지산이 공원으로 남아 있지만 이곳 소공원은 도심속에 작은 녹색오아시스와 같이 남아 있다. 아마 이곳에 소공원이 만들어진 것도 여기 회화나무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가 사는 한진현대아파트는 이곳 소공원에서 남서쪽으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어 진작 와 보았을 테지만 이 동내에서 25년을 살면서 처음 찾은 것은 지난해 8월 22일이고, 어제 다시 찾아 보았다.
이 회화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아래와 같이 게시판에 있다.
병자호란 때부터 자생하고 있는 이 나무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 나무 아래서 혼인을 약속한 두 남녀가 있었는데,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되고 청년이 의병으로 전쟁터에 나가게 되자 두 사람은 전쟁이 끝난 후 청년이 돌아오면 회화나무 아래서 혼례를 치르기로 약속한다. 청년은 전쟁터에서 열심히 싸웠지만 아귑게도 목숨을 잃어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여인은 회화나무 아래에서 돌아오지 않는 청년을 매일 같이 가다렸다. 그런던 청나라 병사들이 그 여인을 보고 혼절시켜 겁탈하려 했는데, 그 순간 회화나무 구멍 속에서 구렁이가 나와 여인을 구하고, 혼절 여인을 보며 눈물을 흘리더니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 후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회화나우의 가운데에 뚫린 구멍에서 황구렁이가 나타났다고 한다. 8.15 해방, 6.25 전쟁 때도 황구렁이가 나타나 나무 주변과 마을을 돌아다녔다고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성시하게 되었고 해마다 이 나무 밑에 터주기를 만들어 떡을 바치곤 했다고 한다.
이 간판에 있는 이야기를 보면 다소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은 눈으로 어림잡아도 나무의 수령이 최소 500년은 되어야 하나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병자호란은 1636년이 일어났다. 그 때 100년 수령이 되어야 나무에 구멍이 생긴다고 예상한다면 최소 1536년 심었다고 보면 수령은 489년이 된다. 대충 500년 수령은 되어야 이 이야기가 믿을 수 있지 않을 가 본다.
아무튼 전설이란 과학적으로 맞는 게 아니라 하나의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로 내용은 가감될 수 있는 걸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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