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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제주 한달살이

항몽유적

by 仲林堂 김용헌 2023. 12. 16.

안내게시판에서 설명과 같이 이곳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는 몽고에 대항한 고려 삼별초의 마지막 항전지이다. 삼펼초가 진도에서 여몽연합군에 진합된 후 김통정이 잔여 세력을 규합하여 제주도로 들어와 항파두리성을 쌓고 맞서 싸운 곳이다. 이 성은 나무판으로 틀을 만들고 그 안에 흙과 모래를 넣어 다짐하여 만든 "판축공법"으로 세웠다고 한다.
내성 모습이다.
주차장 옆 배롱나무다. 여름에 오면 꽃이 좋았을 것 같다.
순의문(殉義門)이다.
내성에 조성한 제단이다.
좌측은 외성과 내성 사진이고, 가운데는 내성의 항공사진이다.
抗蒙殉義碑(항몽순의비)이다.
내성 모습 일부다.
내성 일부 모습이다.

 

 

어제까지 20도가 넘는 무덥기까지 했던 날씨가 오늘은 기온이 6도까지 뚝 떨어졌다. 이호테우해변 숙소를 떠났을 때는 흐리고 바람만 거세게 불었는데 20여분이 달렸을 까? 했을 때 또 빗낱이 차창 위에 떨어진다. 4일째 계속되는 비다. 한달간 제주관광을 나섰는데 비가 온다고 방에만 있을 수도 없어 나서기는 나섰지만 날씨가 따라 주지 않으니 고생을 사서하는 것 같은 여행길이다. 

 

날씨는 바람이 세고 흐리지만 차 안은 딴 세상 평온하다. 항몽유적지에 주차를 하고 문을 열자 바람이 온 몸에 스며들어 온다. 집에서 나올 때 추위를 예상하고 두껍게 입고 나왔지만 예상과 달리 몸이 으시시 하다.

 

패자의 유적인데 과연 남은 게 있을 까? 했는데 유적지 면적이 무척 면적이 넓었다. 과연 어떤 유적이 있을 까? 이곳 저곳 둘러보아도, 안내판을 보아도 눈에 띠는 유적은 보이지 않았다. 날씨가 춥으니 여유롭게 살펴 볼 수도 없어 급하게 이곳 저곳 촬영하고, 별게 없네 하고 나왔다.

 

집에 들어와 안내판과 순의문 안쪽에 있는 "삼별초 최후의 항전지 항파두리성 내성지"란 첫번째 사진 간판을 보고서 이곳에 내성과 외성이 있었고, 내성지는 빨간 선으로 표시한 둘레가 750m, 외성지는 노란선으로 표시한  3.8km라는 그림에서 보고 유적지가 넓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성의 둘레가 3.8km 외성과 750m내성을 쌓았으니 엄청난 공사였을 것 같다. 지금과 같이 장비도 없었을 테고, 인구도 많지 않았고, 그리고 고려조정에서 반대를 하는 가운데 이런 공사를 했으니 대역사였을 것이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럼"에서 아래와 같이 항몽유적을 설명하고 있다.

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은 고려 원종 11년(1270) 2월 고려 조정이 몽고군과 강화를 맺고 강화에서 개경으로 환도하자 이에 맞서 고려 김방경과 몽고의 흔도가 이끄는 여몽연합군에 최후까지 항쟁하다 원종 14년(1273) 전원 순의한 삼별초의 마지막 보루였던 곳으로, 1997년 4월 18일에 사적 제396호로 지정되었다.

이 성은 해발 약 190∼215m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고성천이 있고 서쪽으로는 소왕천이 있다. 지형은 남고북저를 하고 있는데, 북쪽인 경우 토성부근이 급격한 경사를 이루고 있고 동쪽은 완만하나 서쪽은 단애를 이루는 하천을 두고 있어 성을 쌓기에는 천연적으로 적합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전체적인 토질은 자갈이 약간 함유된 황갈색 토양으로 이뤄졌고, 찰기가 아주 강하기 때문에 토성을 쌓기에는 적합한 성질은 띤 토양이라 할 수 있다.

당시에 쌓았던 토성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돌쩌귀, 기와, 자기, 연못터, 장수물, 구시물, 옹성물, 살 맞은 돌 등 많은 유적이 발견되었고, 주요 시설로는 관리사무소, 휴게소, 전시관, 순의문, 순의비를 두고 있다.

1977년부터 현재까지 토지매입을 비롯한 토성복원사업, (시)발굴조사 등의 연차적인 정비사업을 추진해 나가고 있으며, 특히 2011년도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시굴조사 결과 항파두성의 중심부인 내성의 규모 및 내성 내 주요시설물(건물지)의 존재 및 다양한 유물을 확인함으로써 제주도에서의 삼별초 대몽 항쟁 본거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고학적 증거를 파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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