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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혜령공 이지의 묘역

by 仲林堂 김용헌 2022. 8. 8.

수원에서 분당가는 길목에 좌측편에 광교박물관이 있고 그 좌측 상단에 큰 규모의 기와집이 눈에 들어 온다. 저 기와집은 어떤 집안의 건물일 가? 궁금했었다. 그 궁금증을 이번 광교박물관을 관람하고, 이곳을 찾아 보고서야 의문이 풀렸다. 조선 왕자 중 한 사람의 무덤이 있고, 그 왕자를 모시는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었다. 

 

혜령공 이지의 사당이다. 제사지내는 곳이 대궐과 같이 크다. 수 많은 태종의 아들 중에 한 사람인데 그것도 세번째 첩 소생인데도 살아서도 영화를 누렸고 죽어서도 왕자 대우를 받고 있다.
문이 잠겨 있어 담 넘어로 본 재실 모습이다. 대문이 있고 양쪽에 전사청이 있다. 내삼문이 있다.
혜령공 이지의 묘는 언덕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묘는 이지의 아들 묘이다.
근래에 조성한 이지의 신도비이다. 정2품이상 벼슬을 한 사람의 묘 앞에 세우는 비이다.
사당이다.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혜령공은 태종 이방원의 세번째 후궁 선빈 안씨 소생의 아들이다. 태종은 본부인인 원공왕후로부터 양녕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 성녕대군 등 네 아들을 두었고, 나무위키에 나와 있는 후궁 숫자를 세니 17명이나 된다. 본부인과 후궁에서 출생한 손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무관이 기생하나를 두고 서로 차지 하려고 싸우자 태종은 이 기생을 후궁으로 취했다고 한다. 이렇게 죽어서도 영화를 누리는 것은 아마도 세종이 내린 사패지를 오늘까지 잘 보존하여, 광교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엄청난 토지 보상비를 받아서 이렇게 넓은 터에 묘지를 조성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왕조시대에는 왕손이면 과거 공부도 필요 없고 출세하며, 토지도 사패지라고 하여 임금이 내려 주니 명예와 돈을 다 쥘 수 있었으니, 지금으로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불공정 사회였다. 

 

태종의 9번째 아들이 이지이다. 그는 수원 광교신도시에 있던 것을 광교박물관 좌측에 세웠다. 묘의 형태는 사각형(방자 모양)으로 조선 초기의 무덤 양식이다. 

 

혜령공 이지 아들의 묘비이다. 많이 훼손되었다. 6.25 총상흔이 아닌가 싶다.
근래에 세운 이지의 묘비이다.
본래 세운 이지의 묘갈이다.
좌측부터 첫번째 문인석이다.
좌측 두번째 문인석이다.
좌측부터 세번째 문인석이다.
좌측부터 네번째 문인석이다.
혜령공 묘지에서 바라 본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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