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원향교/수원향교 안내

정조가 수원향교를 방문한 그날 모습

by 仲林堂 김용헌 2021. 10. 24.

. 1795년 윤211일 수원향교 모습(Appearance of Suwon HyeongGyeo on leap Febuary 11th by lunner calender in 1795)

 

임금이 화성의 행궁에서 수원향교 성묘(聖廟: 공자의 신위에 展拜) 나가실 때 앞뒤에서 수백 명의 군병이 앞뒤에서 호위했다. 수원향교에 도착하여 호위병이 둘러 경계를 하고 진입하는 입구를 만들었다.

 

원행을묘정리의궤 을묘 윤210일의 기록을 보면 정리소(整理所)21)와 병조가

임금께서 성묘 참배할 때 어느 군영의 기마병과 보병, 그리고 몇 초(: 1초는 100)의 군병으로 거행하느냐고 여쭙니다라고 하니, 임금께서 전교하시길장용영의 친위군 200명과 보병 5(500)를 거느려 전방과 후방 호위군으로 하라라고 하셨다. 그리고 빙 둘러서 호위하고 문을 만드는 사항에 관하여 특히 훈계하라라고 했다.

 

화성전배도(華城展拜圖)를 보면 임금께서 지시한 호위병이 수원향교 둘레를 일렬로 빙 둘러서 호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을 만드는 사항에 각별한 훈계를 이 지도에서 외삼문 밖 남쪽으로 좌우로 늘어선 군대의 진영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밖으로 빙 둘러있는 호위병은 모두 밖으로 향하여 경계하고 있고, 그 안쪽에 깃발을 든 기병(旗兵)이 안쪽으로 향해 좌우 배치되어 있고, 그 안쪽으로 1렬의 호위병이 일렬로 안쪽으로 행해 좌우로 배치되었고, 맨 안쪽에 1렬로 긴 칼을 든 호위병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임금과 그 일행이 호위병이 배열한 중앙을 지나 향교 외삼문으로 통과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성전 월대(月臺) 아래 녹색 도포를 입고 엎드리고 있는 사람들은 집사로 참여한

유생으로 보인다. 내삼문 앞에 있는 홍색과 청색 의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임금 수행원으로 보인다. 명륜당 앞에도 좌우로 외삼문 밖에서와 같이 호위병들이 배열해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 을묘 윤211일 기록을 보면 정조가 수원향교를 방문하는 그 날 정리소가 임금께 아뢰길 성균관 경비를 맡은 홍오번에게는 무명 1필과 베 1필을, 지방 경비인 최덕천 등 2명에게는 각각 무명 1필을, 향교의 남자종 7명에게는 베 1필을 상으로 주고자 합니다아뢰니, 정조께서알았다라고 하였다.

 

이 기록으로 보면 당시 수원향교에는 남자종이 7명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조가 수원향교에 와서 공자 위패에 참배한 모습을 그린 알성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