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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만제(서호공원)

서호(축만제) 해설(14): 서울대학교 수원캠퍼스

by 仲林堂 김용헌 2021. 3. 15.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 캠퍼스는 경기 수원시 권선구 서호로 89에 있었으나 2003년 서울 관학캠퍼스로 이전했고, 지금 일부는 서울대학교 농생명과학 창업지원센터와 수의과학대학으로 사용하고 대부분은 빈터로 남아 있다.

 

서울대학교 농대의 전신은 1904년 설립한 농산학교로부터 시작된다. 1906년 농산학교는 공과는 경성고등공업학교로, 농과는 농림학교로 분리되었고, 농림학교는 1907년 수원으로 옮겼다. 1910년 농림학교는 권업모범장으로 들어갔다. 1918년 1918년 수원고등농림학교가 설립되었고, 1922년 수원농림전문학교로 전문학교로 승격된다. 이 학교는 1922년 수원고등농림학교가 된다. 수원고등농림학교(수원고농)는 대학교가 없던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최고의 농업교육기관이었다. 이 학교에 우리나라의 최고의 수재들이 모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대학교가 없었고 농업이 중요했던 일제강점기에 수원고등농림학교는 우리나라 최고의 학교였다. 이 학교가 해방이 된 후 1946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으로 발족했다. 해방 이후 많은 대학이 설립되었으며 농과대학의 교수의 대부분이 수원고농출신이었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은 1992년 서울대학교 농생명과학대학으로 변경했고, 2003년 수원캠퍼스는 서울 관학 캠퍼스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원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농업교육기관이 1907년부터 2003년까지 96년간 있었다. 우리나라가 산업사회로 발전하기 이전인 1차 산업이 중요했던 시절 특히 수원은 삼성전자가 1975년 수원에 설립되기 이전까지 수원은 농촌진흥청과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이 있는 도시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 당시에는 수원의 버스 노선은 광교산 아래 원호원에서 출발하여 북문-남문-수원역-서울 농대- 진흥청을 돌가는 노선 하나 뿐이었을 정도로 수원에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의 위상은 높았다.

 

옛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정문이다. 관학캠퍼스로 이전한지 올해로 18년이 지났지만 교문은 그대로 있다.

 

직도 교문에 있는 학교명 동판은 이전 후에도 그대로다.

 

옛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본관이다. 지금은 서울대학교 농생명과학 창업지원센터로 농업관련 창업 기업이 많이 입주해 있다.
본관 건물은 리모델링하여 새 건물로 보이나 현관에 누렇게 보이는 현관발코니는 옛 그대로다.
좌측에 보이는 건물은 옛 농대 강의실이고, 우측은 강당이다. 이곳은 상진 학생이 할복자살한 곳이다. 1975년 4월 11일 오전 11시, 수원에 위치한 서울대학교 농대 잔디밭에서는 농대생 300명이 모여 성토대회를 가졌다. 이 대회는 일주일 전인 4월 4일의 시위에서 박정희 정권에 의해 구속된 구속학생을 석방하기 위해 열린 것이었다. 대회에서는 여러 명이 나와서 연설을 했는데, 11시 20분 즈음에 3번째 연사로 등장한 사람이 김상진이었다. 그는 「양심선언문」 을 낭독한 뒤 가지고 있던 과도를 꺼내어 할복했다.

 

1916년에 심은 배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배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나무다. 1916년에 심은 나무라고 하니 올해로 올해로 105년된 나무다.

 

한그루의 기념수가 있다. 그 설명은 아래에 있다.
이 나무는 개교 90주년 기념을 기념하여 1996년 10월 2일 심은 나무니, 또 심은지 25년이 지났다. 이 기념 식수로 이 학교가 설립 115년이 되는 유서 깊은 학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농대 본관 앞 남쪽에 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아직도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원캠퍼스로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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