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본독일대사관 무관인 헤르만 산더(H. T. Sander)가 일본과 러시아가 싸웠던 중국 만주, 조선 등 여러 곳을 정탐하고자 여행했다. 1907년 우리나라에도 서울, 평양, 성진, 인천, 수원 등 여러 곳을 여행했으며, 수원에 방문에서도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수원 방문 사진 중 아래 있는 사진 한 장이 수원향교를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이 책자는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된 것을 수원화성박물관에서 다시 수원 사진만을 모아 수원화성 완공 220주년 기념으로 발간한 "이방인이 본 옛 수원화성"이란 책자에 있는 사진이다. 이 사진의 원본에는 헤르만 산더는 '남쪽 시외에 있는 절'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수원향교를 절로 잘 못 알고 절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진은 향교를 먼 곳에서 촬영하여 건물 구분이 쉽지는 않다. 이 사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맨 앞 우측에 하마비가 보인다. 기와 건물은 맨 앞이 외삼문이고, 그 바로 뒤로 겹쳐서 보이나 명륜당이 있고, 명륜당 바로 뒤에 내삼문이 작게 보인다. 맨 뒤 큰 기와집이 대성전이다. 외삼문 좌우로 동재와 서재가 보이나 지금의 위치보다는 동재는 동쪽으로 서재는 서쪽으로 떨어져 있다. 이 사진으로 보아 동재와 서재가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어 복원할 때 본래의 위치보다 안쪽으로 좁혀 세웠음이 짐작된다. 동재의 우측편에 작은 기와지붕이 보이는데 이 건물이 전사청으로 추정된다. 1907년까지 동재와 서재의 위치는 그 뒤편에 동무와 서무가 보인다. 좀 의아한 것은 은행나무가 보이나 지금에 비하면 훨씬 작아 보인다. 향교 건물 좌우로 지금과는 다르게 능선으로 둘러 쌓여 있는 모습이다.
흰옷을 입은 사람이 외삼문 앞에 보인다. 홍살문 주변 흙이 정리되지 않고 흩어져 있다. 정조 임금이 친림한 1795년에는 아주 잘 정비되었을 텐데 나라가 망하고 일제가 짓밟았던 1907년 향교의 모습도 폐허가 된 처참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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