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상 한국문헌문화연구소장이 화성연구회에서 주최한 "2019년 화성연구회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인장으로 본 정조와 효명세자"에 관한 발표 내용이다. 학술회의는 12월 14일 15시 수원화성박물관 영상실에서 화성연구회 회원 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인장에 관하여 처음 듣는 강의라 새로웠고, 인장 새기는 일이 선비의 고급 문화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고는 놀라웠다. 오늘에 선비가 하는 일이 도장 새기는 일이 큰 일이라고 하니 믿을 수 없었다. 도장이란 한 두개면 그만인 걸 왜 수 많은 도장을 새기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정조는 하는 일이 무척이나 많았을 텐데 도장이 2,000개가 넘는 다니, 그것도 누구 시켜서 만든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새긴 것이라고 하니 당신의 선비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
박철상 소장이 발표한 내용 중 일부이다. '
인장의 문화는 김상헌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노론의 김상헌의 인장을 모방했고, 남인은 허목의 인장을 모방하여 인장만으로도 당파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김상헌의 호인 명철보신과 백구사 인장이다. 백구사는 백사장에서 백구가 날아 가는 모양으로 새겼다.
남인인 허목의 인장이다. 허목의 호 만고장이다.
정조가 외조부인 홍봉한에게 보낸 편지이다. 홍봉한의 아버지 홍보현은 유명 인장인이었기 때문이다.
홍봉한의 인장은 하나의 그림 같다.
우리나라 인장은 왕실에서도 청나라 황제가 사용한 수천개의 인장을 보고 따라 했다.
책 첫페이지에 여러개의 낙관을 볼 수 있다. 낙관을 찍기를 좋아했음을 알 수 있다.
영조가 하사 받은 책에 찍힌 인장이다.
정조의 관인이다.
홍제는 정조의 호로 홍제라는 낙관도 수 십개이다.
정조의 다른 호인 "만천명월주인옹" 인장도 수 없이 많다.
정조 이전 왕들은 인장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인장이 많아지면서 관인이 체계화되었고, 사인을 왕실에서도 수용했다. 사인 인장을 찍은 책을 내려 줘 군신관계가 사제관계로 공적인 관계를 사적인 관계로 만들기도 했다.
효명세자는 순조의 아들로 21살에 요절했지만 많은 시를 남겼고, 인장이 많았다고 한다. 효명세자가 수원을 방문하여 행궁, 서장대 등 방문기를 남겼다.
효명세자가 사용한 중국 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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